사사기 1장: 실패의 이유

해설:

여호수아가 죽은 뒤에 이스라엘 자손은 정복 전쟁을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어느 지파부터 시작해야 하는지를 하나님께 물었고, 하나님은 유다 지파부터 시작하라고 답하십니다(1-2절). 여호수아가 살아 있을 때 유다 지파는 그들에게 주어진 땅을 다 정복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유다 지파는 시므온 지파의 도움을 받아 나머지 땅을 점령합니다(3-21절). 유다 지파의 점령 과정을 서술하면서 저자는 예루살렘을 정복한 이야기(8-10절)와 갈렙이 헤브론을 점령한 이야기(11-21절)를 전합니다.  그런 다음, 저자는 나머지 지파들의 정복 과정을 간략하게 서술합니다(22-36절).

이 과정에서 저자는 가나안 땅 정복이 완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유다 지파는 낮은 지대에 사는 사람들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했고(19절), 베냐민 지파도 예루살렘에서 여부스 사람을 다 쫓아내지 못했습니다(21절). 므낫세 지파도(27절), 에브라임 지파도(29절), 스불론 지파도(30절), 아셀 지파도(31절), 납달리 지파도(33절), 단 지파도(34절) 점령한 땅에서 토착민을 완전히 몰아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동일했습니다. 저자는 이어질 사사 시대에 반복적으로 일어난 이스라엘의 불행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독자들에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묵상:

오늘날의 감수성으로 보면,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죽이는 ‘헤렘 전쟁’은 잔인하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정당전쟁이론'(Just War Theory, 정당한 이유 때문에 정당한 방식으로 행하는 전쟁은 정당하다는 이론)으로 보더라도 ‘헤렘 전쟁’은 정당하지 않아 보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거룩한 제사장의 나라로 세우기 위해 일회적으로 허락한 필요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우상숭배와 부도덕한 문화)와 철저히 단절하지 않으면 거룩한 제사장의 나라로 세워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럴 것까지야 없지 않을까?’라는 마음 때문에 ‘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욕심 때문에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저자는 그 사실을 전하면서 앞으로 이어질 불행을 예고해 줍니다.

이것은 우리의 영적 생활에 대한 좋은 메타포입니다. 루터는 죄악을 뱀에 비유했습니다. 뱀은 머리만 집어 넣으면 온 몸을 집어 넣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처럼 죄악은 ‘머리만 넣게 해 줘’라고 속삭이며 우리를 속입니다. 죄악은 우리의 존재 안에 머리를 집어 넣고는 어느 새 몸 전체를 끌어 들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죄악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개역개정, 살전 5:22)고 말한 것입니다. 죄악에 대해서는 ‘이 정도야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가장 위험합니다. 하나님의 뜻에서 어긋난다는 생각이 있다면 단호하게 잘라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지어질 것입니다. 

4 thoughts on “사사기 1장: 실패의 이유

  1. 일상생활에서 많은 경우 우리는 적당히 타협하면서 사는 습관에 익숙해져있어 하나님의 말씀도 적당한 선에서 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 주시는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을 타협할 때 올수있는 불행을 예고해 주는 것 같습니다.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까지 모두 주님앞에 내어놓고 기도하며 주님의 지시를 따르는 지혜를 구합니다, 내 머리가 앞서지 말고 내 가슴이 앞서는 믿음을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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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털끝만한 아주 아주 적은, 세상이 추구하는 탐욕과 죄는 괜찮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믿는것이
    크나큰 실패의 원인입니다. 끝없는 사랑의 하나님이신 동시에 공의의 주님이심을 항상 기억
    하기를 원합니다. 보혈로 온전히 모든 세상의 우상들을 몸과 영혼에서 쫓자내도록 도와 주십시오.
    이웃과 함께 언젠가는 주님앞에 섰을때 칭찬받고 천국잔치에 초대받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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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께서 명하신 가나안 땅의 토착민들을 내쫓거나 죽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화’가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에 돌아올것을 짐작하게 됩니다. 목사님의 말씀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연민과 함께 자신들의 욕심으로 가나안 토착민들을 데리고 살아갑니다. ‘욕심은 죄를 낳고, 죄는 사망을 낳느니라’ 라는 말씀이 기억납니다.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 의 공식에 맞추어서 삽니다. 인생에 무엇을 더할 때마다 삶이 윤택해지고, 자신만의 Wish list를 하나씩 “+”하는 그런 삶에만 집중합니다. 그러나 모든 GOOD (좋은 것들) 가운데 GOD 이 빠진다면, 그런 인생은 0 으로 맞추어지게 됩니다.

    GOOD – GOD = 0 의 공식이 아닌, GOD +0 = GOOD 의 공식을 따라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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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주민들을 ‘안’ 쫓아 내었는지 ‘못’ 쫓아 내었는지… 두 가지 다 였을 것입니다. 중 1쯤 때 처음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가리지 말고 무조건 다 죽이라는 명령을 읽고 혼란에 빠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질투하는 신”이라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성경은 진리이기 때문에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라도 구약의 하나님은 좋아하기도, 사랑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구약을 읽지 않아도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이런 생각이 다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정말 틀리지 않을까…예수님은 구약의 여러 책들을 어떻게 보실까…궁금할 때도 있습니다. 가나안과 이스라엘의 싸움은 현대에서 일어나는 인종청소 genocide 나 종교 전쟁과 겉모양은 비슷해도 뿌리는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약에 그려진 이집트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이집트 국가나 사람에 국한된 것이 아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무대에서 일어나는 드라마가 그 자체보다 더 큰 인생 드라마를 보여주는 것과도 같습니다. 사사기는 시작부터 불안정합니다. 이 불안정한 상태, 어딘지 불안한 예감은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습니다. 분명하고 준엄해야 할 때와 유연하게 봐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하는 나의 한계. 못하는 것이지 안하는 것이 아니라는 핑계나, 안하는 것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결국은 같은 결론. 부족한 나와 마주앉은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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