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기 22장: 동쪽 지파들이 기념비를 세우다

해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강 동쪽 모압 평지에 머무는 동안 모세는 두 지파 반(르우벤 지파, 갓 지파, 므낫세 지파 절반)을 그곳에 정착시킵니다. 요단 강을 건너기 전, 여호수아는 동쪽에 정착한 지파들의 장정들에게 이스라엘의 정복 전쟁에 참여할 것을 요청합니다(1:13-18). 그것이 한 민족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요청을 받아 들여 가족을 요단 강 동편에 두고 다른 지파들과 함께 요단 강을 건너 전쟁에 참여합니다. 

가나안 땅의 절반 이상을 점령하고 모든 지파에게 땅을 분배해 준 다음, 여호수아는 동쪽 지파에 속한 장정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말합니다(1-4절).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집을 떠나 전쟁에 참여했다는 것은 대단한 희생을 감당한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모세가 준 계명과 율법을 잘 지키라고 당부합니다(5절). 또한 그는 그동안 모은 전리품들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6-8절). 그들은 실로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다음 그들의 고향으로 향합니다(9절).

그들은 요단 강 근처에 있는 그릴롯에 멈추어 그곳에 제단을 쌓습니다(10절). 그 제단은 요단 강 동쪽 편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높았습니다. 그 소식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해졌고, 그들은 동쪽 지파들이 실로의 성막을 대신할 단을 쌓고 있는 것으로 오해합니다(11-12절). 그들은 하나님께서는 실로에 있는 성막에서만 제사를 행하도록 허락하셨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릴롯에 또 하나의 제단을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일입니다. 그들은 동쪽 지파와의 일전을 준비한 다음, 각 지파의 대표 열 사람을 비느하스 제사장과 함께 파견합니다(13-15절). 

비느하스와 대표단은 브올에서 일어난 일과 아간으로 인해 일어난 일을 상기시키면서 그들의 악행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재앙이 떨어질 것이라고 책망합니다(16-20절). 동쪽 지파 대표들은, 그 제단은 제사를 드리기 위해 세운 것이 아니라 동쪽 지파들도 이스라엘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자손들에게 기억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합니다(21-31절). 비느하스와 대표들은 그 해명에 만족하여 이스라엘 진으로 돌아와 보고했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로 인해 하나님께 찬양 드립니다(32-34절).

묵상:

소임을 다하고 자기들의 땅으로 돌아가는 동쪽 지파들의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오늘 날의 요단 강은 건너기가 어렵지 않은 작은 강이지만, 지형 변화가 되기 전에는 웬만해선 건너기 힘든 강이었습니다. 따라서 이제 돌아가 정착하고 나면 강 동편에 있던 지파들은 서편에 있던 지파들과 서서히 분리될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요단 강으로 인해 왕래가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5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쟁에 참여했던 것은 형제애를 따른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형제애가 돈독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흐려질 것이 분명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나면 서쪽 지파들은 동쪽 지파들을 이방인으로 간주할지 모르고, 동쪽 지파들도 서쪽 지파들을 같은 민족으로 생각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은 요단 강 서쪽에 커다란 기념비를 세웁니다. 그것은 동쪽에 자리 잡은 두 지파 반이 이스라엘에 속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는 상징이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휴전선과 비무장지대로 나뉘어 있는 우리 나라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이렇게 나뉜지 70년이 지난 지금, 젊은 세대는 ‘왜 굳이 통일해야 하느냐? 각자 편한 대로 나뉘어 살아도 되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단일민족’이라는 신화적 믿음이 흐려지니 그런 의문이 더 강해집니다. 이런 생각이 더 굳어지기 전에 남과 북이 하나의 겨레임을 잊지 않게 해 주는 기념비라도 하나 세우면 좋겠습니다. 휴전선이 제거되고 비무장지대가 생태 공원으로 조성되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도합니다.  

3 thoughts on “여호수아기 22장: 동쪽 지파들이 기념비를 세우다

  1. 정복 전쟁이 마무리 되면서 루벤지파 갓 지파 반쪽 무나세 지파의 장정들이 원 위치로 돌아가며 세운 단을 보는 눈이 서로 다를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그 단을 제단으로 보니냐 아님 기념비로 보느냐로 충동 할번 한 그 들의 시각차이를 보며 고국의 현 젊은 세대들의 이질적인 통일관을 생각해 봅니다.
    지난 2500년 이상을 함께 살아온 한 민족이 못난 조상들 때문에 남북으로 갈려 다른 정치체제로 갈등하며 적대적인 환경을 주님께 아렙니다, 주님의 자비와 은총을 내려주시어 함께 어우러져 사는 통일로 이끌어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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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단일 민족임을 잊지않기를 원합니다. 통일은 우리의 긍극적인 소원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은혜안에서 통일 이어야 합니다. 주님을 등진 통일은 차라리 없는것이 축복임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공산치하에서 살아보지 못하고 6.25를 격어보지 못한세대가 잠에서 깨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의 시간에 통일한국이 이루워지기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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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어제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맞아 의회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의회 연설을 하기 전에 언론사 앵커들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지난 100일 동안 세계의 여러 대표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의 수장과 만나면서 느낀 것 한 가지는 과연 “민주주의가 21세기의 도전 앞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이며, 미래는 역사의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할(쓸) 것 “they’re going to write about this point in history”라고 말했답니다. “미래를 기억한다 remembering the future”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사람은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계획합니다. 과거에 배운 교훈과 경험을 토대로 미래를 꿈꾸고 계획합니다. 여호수아는 세 지파에게 요단강 동쪽으로 돌아가라고 명합니다. 이들은 요단강 언덕 그릴롯에 여호와의 제단을 쌓습니다. 이 소식은 이스라엘의 나머지 지파에겐 싸움을 준비하게 하는 위험한 소식입니다. 세 지파는 이 제단을 쌓은 이유를 설명합니다. 우리도 같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있다는 것을 기리기 위해서라고 답합니다. 뒤에 올 자손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는 제단이라고 말합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만큼 사는 모습이 달라져도 이 제단을 보고 우리가 한 조상에게서 나왔구나, 우리가 다 형제구나…라고 말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쌓은 탑이라고 말합니다. 삶에서 일어나는 조각 같은 여러 일들은 다 과거라는 시간 속으로 가지만 동시에 미래로 흘러들어가 미래의 바탕을 쌓기도 합니다. 이미 경험한 과거가 아직 살지 않은 미래를 꿈꾸게 하고 계획하고 건설하게 합니다. 미래는 우리의 어느 부분을 말하고 기억할 것인가…’너희 조상은 하나님을 경배하며 살았다’는 과거가 미래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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