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기 19장: 지도자의 모범

해설:

저자는 이스라엘의 나머지 지파에게 배당된 땅을 차례로 묘사합니다. 먼저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에게 주어진 땅의 일부를 배당 받습니다. 유다 지파에게 주어진 영토가 넉넉했기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1-9절). 다음으로 스불론 지파(10-16절), 잇사갈 지파(17-23절), 아셀 지파(24-31절), 납달리 지파(32-39절) 그리고 단 지파(40-48절)에게 땅을 분배합니다. 이 지파들은 가나안 땅의 북쪽에 자리를 잡습니다. 

영토 분배를 다 마칠 때까지 여호수아는 한 뙈기의 땅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가 요구하는 땅을 주겠다고 제안했고,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에게 주어진 땅 중에서 산간지방을 요구합니다. 그는 그곳에 성을 짓고 자손들과 함께 살았습니다(49-50절). 이렇게 하여 열두 지파에 대한 토지 분배가 모두 완료되었습니다(51절).

묵상:

지도자는 위험 앞에서는 가장 앞자리에 서고 이익 앞에서는 가장 뒷자리에 서는 사람입니다. 가나안 땅에서 영토를 분배할 때 여호수아는 그런 지도자의 모범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에게 땅이 돌아갈 때까지 그는 자신의 몫을 챙기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그가 요구하는 땅을 주겠다고 제안하자 여호수아는 자기가 속한 에브라임 지파의 땅 중에서 가장 척박한 산간지방을 택합니다. 가장 비옥한 땅을 가지겠다고 해도 반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 터인데, 그는 자원하여 가장 좋지 않은 땅을 요구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런 지도자를 원합니다. 국가에도, 회사에도, 교회에도, 작은 조직에도 이런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가 보는 지도자들은 위험 앞에서는 가장 뒷자리에 서고 이익 앞에서는 가장 앞자리에 섭니다. 국민 앞에서는 공정과 정의를 외치면서 개인적으로는 사사로운 이익을 추구합니다. 그런 사실이 드러나도 부끄러워 할 줄을 모릅니다. 권력을 추구하는 이유가 봉사하는 데 있다고 말하면서 실은 개인적인 이익을 추구합니다. 그런 지도자들 때문에 나라가, 회사가, 교회가 망해 갑니다.

그래서 먼저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나에게 작은 권세와 권력이라도 주어진다면, 그것을 섬기는 도구로 사용하리라고 다짐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위험에는 가장 먼저 나서고 이익에는 가장 뒷자리로 물러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3 thoughts on “여호수아기 19장: 지도자의 모범

  1. 여호수아를 통해 지도자의 덕목을 배우게 됩니다, 가장으로써 또 사회의 일원으로 주어진 책임을 성실히 이행하며 부끄럽지 않은 삶을 영유할수있도록 주님의 가호를 구합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겸손과 신실로 이어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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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유산을 충분히받은 유다지파를 본받아 부족한 지파에게 나누는 아량을 원합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또한 세상 모든나라의 지도자들이 오늘의 사귐의 소리를 읽고 깨닫고
    진정으로 회개한다면 모든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그리고 주님의 임재와 통치를 누릴수
    있습니다만, 죄악에 깊이 빠져있는 세상에서는 주님의 재림때까지 불가능 합니다.
    마라나타!! 주님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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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한국 사회는 ‘공정’의 숙제를 풀지 못해 늘 몸살을 앓습니다. 공정의 문제는 기회와 같이 움직입니다. 결과가 공정한지 아닌지는 기회부터 공정했는지를 봐야 합니다. 교육을 받을 기회, 일자리를 얻을 기회, 집을 살 기회…달리기를 하는데 출발선이 같지 않다거나, 달리는 거리가 같지 않다거나 혹은 기록을 재는 시계가 같지 않다거나 하면 달리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땅을 다 나눴습니다. 시므온 지파는 유다 지파가 자기들 땅의 일부를 떼어 준 땅을 받았습니다. 유다가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 (9절) 이라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단 지파는 원래 받은 땅보다 넓어진 영토를 갖게 되었습니다. 오늘 챕터로는 다 알 수 없지만 레셈 (아모리 부족?)과 싸워 그들의 땅을 차지했습니다. 시간 적으로는 뒤에 일어난 일일 것입니다. 여호수아도 자기 몫의 땅을 받습니다. 지도자로서 맨 마지막에,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땅을 청합니다. 지도자는 자기 것을 포기하거나 양보해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 것부터 먼저 취하지 않기만해도 좋겠습니다. 어떤 지도자를 말할 때 “받는 데 익숙해서” 혹은 “받고만 살아서”라는 표현이 붙는다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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