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기 16장: 하나님의 시간

해설:

야곱에게는 열두 아들이 있었고 그들이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됩니다. 레위 지파는 성소에서 섬기는 일을 위해 토지를 분배 받지 못합니다. 반면, 요셉의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가 각각 별도의 지파를 형성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이름에서 요셉의 이름은 빠져 있습니다. 레위 지파까지 합하면 열세 지파가 되는 셈이지만, 토지는 열두 지파에게만 분배되었습니다.

16장은 요셉에게서 나온 두 지파 즉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지파에게 주어진 땅의 경계선을 묘사합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므낫세 지파의 절반은 요단 강 동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비를 뽑아 므낫세 반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에게 배당된 땅은 예수님 당시에 갈릴리와 사마리아로 불렸던 지역입니다. 이스라엘이 남북 왕국으로 나뉘었을 때 북왕국 영토의 노른자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예언서에 보면 북왕국 이스라엘을 에브라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사 11:13; 호 5:3 등).

묵상:

므낫세는 요셉의 큰 아들이고 에브라임은 작은 아들입니다. 임종이 가까워지자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을 불러 축복을 해 줍니다. 그 때 요셉은 므낫세를 야곱의 오른편에, 에브라임을 왼편에 서게 합니다. 관례 대로 큰 아들에게 우선권을 주려 한 것입니다. 그러자 야곱은 팔을 엇갈리게 뻗어서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두고 왼손을 므낫세의 머리에 둡니다. 그것을 보고 요셉이 야곱에게 손을 잘못 두었다고 말합니다. 야곱은 모르고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한 것이라고 답합니다. 동생 에브라임의 자손이 형 므낫세의 자손보다 더 크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입니다(창 48장).

모압 평야에 도착했을 때 행했던 두 번째 인구 조사에 의하면 므낫세 지파는 오만 이천 칠백명이었고 에브라임 지파는 삼만 이천오백 명이었습니다(민 26장). 야곱의 예언이 4백 년이 지난 후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정착 과정에서 므낫세 지파는 에브라임 지파가 배당 받은 영토보다 세배 정도 넓은 땅을 분배 받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 에브라임 지파는 번성하여 북왕국 이스라엘의 대표 지파가 됩니다. 남왕국은 유다 지파로 대변되고, 북왕국은 에브라임 지파로 대변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때로 인간적인 시각에서 보면 너무도 느리게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그 약속은 결국 이루어집니다. 사람의 시간과 하나님의 시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영적 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하나님의 시간을 믿고 기다리는 것에 있습니다. 

4 thoughts on “여호수아기 16장: 하나님의 시간

  1. 에브라임 지파가 가나안사람들을 완전히 쫓아내지못해 아직도 그후유증이 남아있는것을 보고
    마음속에 차지하고있는 세상의 가치관을 온전히 쫓아내어 후유증이 없기를 원합니다.
    허락하신 기업에 감사하며 자족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함께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사랑을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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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현대 생활에서 시간의 개념은 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이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일 수도 있다는 주님의 시간을 생각하며 주님의 역사를 생각해 봅니다, 지난 날들의 은총에 감사드리며 앞으로의 은혜에 더욱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역사를 교훈삼아 더 이상 인종차별의 악에서 벗어나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 같은 은총이 내려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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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의 시간과 타이밍은 절대 늦지도, 빠르지도 않고, 항상 정확합니다. 그것을 믿고 오늘도 담대함으로 하나님의 시간인 카이로스를 바라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신실하게 이루실 하나님을 기대하고, 기도하고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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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두 아들이 있을 때 작은 아들이 중심에 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 에서와 야곱,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그렇고 아버지에게서 유산을 미리 받아 집을 떠나는 예수님의 이야기도 둘째 위주로 펼쳐집니다. 아이들을 키워 보니 의도하지 않았어도 다 첫째가 중심이었던 것을 봅니다. 둘째 아이로선 서운해 할 일입니다. 둘째의 몫을 따로 정하지 않으면 둘째만을 위한 것은 없습니다. 야곱처럼 일부러 손을 바꿔 축복하지 않으면 둘째가 넘버 원이 되는 법은 없습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땅을 지도로 보니 선명하게 다릅니다. 에브라임은 작지만 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므낫세는 변방에 넓게 펼쳐집니다. 땅을 분배할 때 제비뽑기로 나누지 않았다면 지파 간에 큰 싸움이 났을 것입니다. 삶 속에는 주어지는 것 (given)과 얻는 것 (earned)이 있습니다. 삶의 질서는 이 사이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생명은 주어진 것인데 삶은 얻는 것입니다. 콘트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깨달아 밸런스를 이루며 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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