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기 15장: 그니스 사람 갈렙

해설:

저자는 유다 지파에게 주어진 땅의 경계를 자세하게 묘사합니다(1-12절). 아래 지도에서 보듯, 요단 강 서쪽에 자리잡은 아홉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 중에 유다 지파에게 주어진 영토가 제일 넓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남북 왕국으로 분리될 때 남왕국이 ‘유다’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가 약속한 대로 갈렙에게 헤브론 땅을 유산으로 줍니다. 그곳에는 거인족의 후손이 살고 있었는데, 갈렙은 그들을 무찌르고 헤브론 성을 점령합니다(13-14절). 갈렙은 드빌 성읍까지 손에 넣기 위해 그 성읍을 점령하는 사람을 자신의 사위로 삼겠다고 약속합니다(15-16절). 그 성을 점령한 사람은 갈렙의 조카 옷니엘입니다(17절). 그는 이스라엘의 첫 사사가 됩니다(삿 3장). 옷니엘과 결혼한 갈렙의 딸 악사(당시에는 근친 간의 결혼이 일반적인 관례였습니다)는 아버지에게서 밭을 더 얻어내라고 졸랐고, 갈렙은 사위의 청을 받아들여 윗샘과 아랫샘을 줍니다(18-19절). 

저자는 다시금 유다 지파가 정착한 성읍들의 이름을 일일이 열거합니다(20-62절). 여호수아기를 최종 편집한 성서 저자는 남왕국 유다 사람(들)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자는 예루살렘 성에 살고 있던 여부스 사람들을 다 몰아내지 못했다는 사실을 간단히 언급합니다(63절).

묵상:

갈렙은 ‘그니스 사람’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민 32:12; 수 14:6). ‘그니스 사람’은 가나안의 토착민 중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약속하면서 그니스 사람의 땅도 그 안에 포함된다고 말씀하십니다(창 15:20). 그런데 갈렙은 유다 지파의 대표가 됩니다. 그러니까 그는 야곱의 자손이 이집트로 이주할 때 동행했던 종의 자손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집트에 거주하는 동안 그의 조상은 유다 지파 사람과 결혼하여 이스라엘 사람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입니다. 유다 지파 사람들은 갈렙을 여전히 ‘그니스 사람’이라고 불렀지만 동족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위 옷니엘은 이스라엘의 첫 사사가 됩니다. 옷니엘은 갈렙의 조카였으니 그 역시 ‘그니스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혈통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인정 받기 위해서는 열두 지파 중 하나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때로 예외도 있었습니다. 가나안 사람 라합이 이스라엘 백성으로 받아들여지고 후일에 다윗 왕의 조상이 된 것처럼, 그들은 갈렙의 조상을 그들의 동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로 인해 먼 훗날 갈렙은 유다 지파의 대표로서 이스라엘 역사에서 존경 받는 지도자가 되었고, 그의 조카이자 사위 옷니엘은 첫 사사요 흠 없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순혈주의’로 하자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뒤지지 않을 우리에게 이 이야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 ‘순수혈통’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순혈주의’는 신화요 조작입니다. 역사 상 ‘순혈주의’가 얼마나 많은 비극을 만들어 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3 thoughts on “여호수아기 15장: 그니스 사람 갈렙

  1. 이스라엘이 주장하는 순혈주의나 우리가 일제하에 주장했던 단일민족이나 그 당시에 외세의 위협하에 놓였을 때 자기민족을 단합하여 외세에 대항하기위한 선전이었음을 생각해보며 혈통주의에 시달리고 있는 현 미국의 인종차별을 생각해 봅니다.
    그나마 조지 후로이드의 사망에대한 쥬리들의 옳바른 판단으로 인종주의를 극복하려는 새로운 물결속에 하나님의 의를 구합니다.
    주님의 의가 이 땅에 온전히 이루어지는 날이 속히 오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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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모든 종족이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보혈의 은총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샘물같은 보혈이 항상 몸과 영혼에 흘러 죄씻음받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귀한 보혈을 이웃과 함께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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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어제는 갈렙의 남다른 시각을 묵상했는데 오늘 그의 배경에 대한 설명을 읽으니 거기에 힌트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다양성’은 뒤늦게 배운 단어입니다. 한국에 살 때는 모르고 살았던 개념입니다. 엘에이에 와서 큰 아이를 초등학교에 들여 보내고 영어 못하는 아이학교에 적응하는거 도와주려고 곁에서 같이 배우다 보니 학교에서 보내는 통신문에 ‘다양한 diverse,’ ‘활기찬 vibrant’ 등의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공동체라고 번역해서 이해하던 커뮤니티 community 단어도 교회 공동체를 넘어 넓고도 자연스럽게 쓰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엘에이는 다양성이 장점인 사회입니다. 다양성으로 인해 천천히 느리게 움직이는 것이 마이너스로 느껴질 때가 없지 않지만 조금 지나고 보면 다양성을 인정하는 과정 자체가 동력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갈렙의 능력도 자신의 이질성을 극복해 나가는 동안에 길러진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공동체 입장에서도 약간씩 다른 부분들을 수용하고 앞길을 터주는 과정이 뿌리를 튼튼하게 만드는 결과가 되는 지도 모릅니다. 다른 것에 대한 불편함과 불안함은 늘 계속 됩니다. 새로운 것은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아직 이름도 붙이지 못하고 “a novel virus” 라고 불렀습니다. 새로운 바이러스, 신종 바이러스라는 뜻입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이러스와 달랐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사람 사는 세상은 다 새로운 것이 익숙한 것이 되어가는 시간일 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새로운 것, 다른 것은 다 하나님의 초대라는 생각도 합니다. 새로운 시간 앞에서 다른 존재가 되어가는 여정을 주님께만 의지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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