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기 7장: 아간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

해설:

이스라엘 백성 중에 아간이라는 사람은 여리고 성을 점령할 당시 외제 외투와 금덩이와 은덩이를 몰래 가져다가 집에 숨겨 놓습니다(21절). 금과 은은 주님의 창고에 모아 놓고 나머지 물건들은 모두 불태워야 했는데, 아간이 욕심을 낸 것입니다. 이 일에 대해 하나님이 진노 하셨습니다(1절). 

여호수아는 그 사실을 모른 채 정찰대의 의견에 따라 삼천 명의 병사를 선발하여 두 번째 표적인 아이 성을 공격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이 성 백성의 거센 저항을 받고 패퇴합니다.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움에 빠집니다(2-5절).

예상치 않은 패배 후에 여호수아는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이스라엘의 장로들도 여호수아를 따라 재를 뒤집어 쓰고 꿇어 앉습니다(6절). 여호수아는 첫 번째 패배로 인해 지도자로서의 위상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한 그 이야기가 전해지면 가나안 땅의 다른 민족들이 자신들을 우습게 볼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이런 사정을 아뢰며 호소합니다(7-9절).

하나님은 그 패배가 이스라엘의 숨겨진 죄 때문임을 알리십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정결하게 한 후에 지파별, 가문별, 집안별, 장정별로 제비를 뽑아 죄를 범한 사람을 찾아내라고 하십니다(10-15절). 다음 날,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했더니 유다 지파에 속한 아간이 범인으로 드러납니다(16-18절). 여호수아는 아간에게 죄를 자백하라고 명했고(19절), 아간은 외제 외투와 금덩이와 은덩이에 탐이 나서 집에 가져다가 숨겼다고 고백합니다(20-21절). 

여호수아는 아간과 식구들을 아골 골짜기로 데리고 가서 투석형에 처한 다음 그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물건을 불태워 없앱니다(22-25절). 그런 다음 그들은 그곳에 돌무더기를 쌓아 놓았습니다. 그 때에야 하나님은 진노를 거두셨습니다(26절).

묵상:

이 이야기는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를 생각나게 합니다. 두 이야기 모두 인간적으로 보면 지나쳐 보입니다. 아간이 잘못을 한 것은 맞지만 극형에 처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경우에도 극단적인 심판을 받을만큼 큰 잘못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처사가 부당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그분의 정의는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와는 비교할 수 없이 완전하고, 그분의 사랑은 우리의 사랑에 비할 수 없이 순전합니다. 바울 사도가 말한 대로, 그분이 어리석음은 우리의 지혜로움보다 뛰어납니다. 우리의 짧은 소견에 하나님의 처사가 지나쳐 보이고 부당해 보인다 해도, 하나님께는 그분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이렇게 행하셨다고 받아 들여야 합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그분의 심판은 준엄하십니다. 피조물로서 우리는 그분의 심판 앞에서 억울하다고 혹은 부당하다고 항변할 수 없습니다. 또한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죄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처사가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죄를 하찮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면, 아간이 받은 심판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살아 남은 것이 이상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의 무게대로 심판하신다면 살아 있을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은 그분의 무한한 자비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죄를 두려워하며 거룩하게 살기 위해 더욱 마음을 다잡는 것입니다. 

4 thoughts on “여호수아기 7장: 아간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

  1. 십자가없이는 일초도 살수가 없습니다. 지난날에 아간과 같이 탐욕이 가득 하였고 지금도
    종종 욕심이 영혼에서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보혈로 성결 해지고 매일 아침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승리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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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전쟁중에 흔히 있을 인간의 욕심이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에 비추어보면 얼마나 큰 잘못인지를 아간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살면서 흔히 저질러지는 많은 Excuse들을 회상해 보며 하나님의 기준을 내 본래의 속성에 비추어보며 내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를 자각합니다.
    십자가늬 자비로 죄의 속성을 씻어주시고 주님의 말씀대로 올바로 설수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주님의 말씀이 오늘 하루를 지배하는 삶으로 이끌어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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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먼저는 여호수아의 행동에 주목하게 됩니다. 아이성 전투에서 패전을 한 후에, 이스라엘 장로들과 하나님 앞에 재를 뒤집어 쓴 후에 고백하는 장면입니다. 여호수아는 전쟁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바로 알고 있었습니다. 패전 한후에, 바로 하나님께 간구하며 고백하는 장면은 여호수아의 중심이 하나님께로 향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정의는 나의 기준이 아닙니다. 내가 때로는 이해할 수 없을 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의 판단은 항상 옳으며, 그것을 따라가는 삶이 복된 삶입니다. 내 자리를 넘어서서, 나의 기준으로 선과 악을 판단한다면 그것이 영적으로 선악과를 따먹는 행위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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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간의 욕심이 공동체의 운명을 흔들어 놓습니다. 욕심과 두려움은 뿌리가 같은 감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간은 여리고 성의 재물에 눈이 멀어 명령을 어기고 죄를 짓지만 다른 사람도 자기 몫으로 몇 가지를 빼돌리고 싶은 유혹을 받았을 수 있습니다. 이런 욕심의 유혹에 흔들려 무너지는 것은 자기와의 싸움에서 패배했다는 뜻이고 그런 정신으론 용감하게 전쟁을 치룰 수가 없습니다. 행동으로 옮긴 것은 아간 뿐일지라도 욕심에서 자란 누룩은 두려움으로 변해 주변 사람에게까지 퍼져 간 것인지 모릅니다. “그들은 싸우다가 뒤돌아서서 도망치고 말았다. 왜냐하면 너희는 내가 없애라고 한 것을 모두 없애지 않고, 나에게 완전히 바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12절).” 하나님만 의지하고, 오직 그분만 신뢰한다면 눈 앞에서 번쩍이는 아름다운 겉옷과 금과 은에 마음을 뺏기는 일은 없었을텐데 아간은 영원과 순간 중에서 순간을 택했고 이 선택은 그가 원했던 안정과 부요 또한 찰나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살면서 수시로 느끼는 두려움은 내 속에 있는 욕심을 다스리지 못한 데서 오는 것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힘을 내고 용기를 가지라는 명령은 가나안 땅에서 치뤄야 할 무수한 전쟁을 앞둔 백성에게 하신 말씀인데 새로운 땅만 미지 unchartered territory가 아니라 살아가는 모든 시간 역시 한 번도 밟지 않은 땅입니다. 그 앞에서 용기를 내려면 과거의 나에게서 벗어나야 합니다. 과거의 나라면 당연히 원했을 겉옷과 금과 은을 아무렇지도 않게 태울 수 있어야 합니다. 새 주간, 새 땅에서 만나는 유혹 앞에 흔들리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흔들리는 것은 사람의 조건일지라도 그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은 선택 임을 기억하고 담대하게 이겨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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