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기 6장: 여리고 전쟁의 교훈

해설:

때가 되었을 때 주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여리고 성을 점령하는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맨 앞에 무장한 선발대가  서고, 그 뒤에 제사장 일곱 명이 각각 숫양 뿔 나팔 일곱개를 가지고 따르고, 그 뒤로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따르고, 다른 백성은 그 뒤에 서서 여리고 성을 돌라고 하십니다. 처음 엿새 동안은 하루에 한 바퀴만 돌고, 일곱째 되는 날에는 일곱 번 돈 후에 일제히 함성을 지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성벽이 무너질 것이라고 하십니다(1-5절). 

여호수아는 명 받은 대로 처음 엿새 동안 하루에 한 바퀴씩 여리고 성을 돌게 합니다(6-14절). 일곱째 날이 되자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전날처럼 여리고 성을 여섯 바퀴 돈 후에 일곱 번째 돌 때에는 일제히 소리를 지르라고 이릅니다. 그러면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릴 터인데, 성이 무너지면 성 안으로 들어가 라합과 그의 가족만 살려 두고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죽이라고 명합니다. 또한 은이나 금, 놋이나 철로 만든 그릇만 모아 놓고 나머지는 불태워 없애라고 명합니다(15-19절).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수아가 말한 그대로 행했고, 첫 점령지인 여리고 성을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20-26절). 이 일로 인해 여호수아의 명성은 더욱 높아집니다(27절).

묵상:

어릴 때 ‘성경 동화’ 시간에 여리고 성 함락 이야기를 들으면서 신나 했던 기억이 납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지기까지의 일들이 참으로 드라마틱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님은 정말 위대하시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철이 들고 나서 이 이야기를 읽을 때는 17절과 18절에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전멸시키라”는 명령은 히브리어로 ‘헤렘’인데, 이것은 모든 살아 있는 것(여성, 어린이, 노인, 가축까지)에 대한 완전하고 철저한 살륙을 의미합니다. 야만의 시대에 전쟁에서 그런 만행은 자주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악행입니다. 그런데 모세는 죽기 전에 가나안 점령에 대해 말하면서 헤렘을 명령합니다(신 7:2). 여호수아는 그 명령을 따라 여리고 성에 살고 있던 모든 생명체를 멸절시키라고 명합니다. 이번 만이 아니라 여호수아의 가나안 점령 과정에서 헤렘은 하나의 원리 혹은 패턴이 됩니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새롭게 시작하기 위해서는 한시적으로 헤렘 전쟁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가나안 토착민들의 문화와 관습을 깨끗이 치워내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에 물들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거룩한 제사장의 나라로 자라가는 데 방해가 될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세와 여호수아는 헤렘 전쟁을 ‘필요악’으로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실제로 가나안 정착 후에 이스라엘은 더 이상 헤렘 전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불행하게도,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서 신속하게 우상 숭배에 빠지고 부도덕한 생활 방식에 물들었습니다. 헤렘 전쟁이 그들의 거룩성을 보장해주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전쟁으로 애꿎은 희생자만 만들어 낸 셈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은 환경을 쓸어내는 것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는 교훈을 얻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부름은 죄악이 만연한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만의 성을 쌓고 그 안에 도피하라는 뜻도 아니고 우리의 기준에 따라 사람들을 구분하고 배척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알고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를 알아 차별성 있는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헤렘 전쟁은 그 진실을 잊지 말라는 뼈저린 실패의 기억입니다. 

4 thoughts on “여호수아기 6장: 여리고 전쟁의 교훈

  1. 구약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의 잔인성을 종종 접하게 되는데 그 때마다 왜 그렇게 잔인하게 아무 죄없는 토착민들을 말살하라고 말씀하시며 또 그렇게 따르려는 이스라엘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나 의야한 경우가 많지만 내 머리로 이해 못하는 것들은 그런대로 넘어가다보면 언젠가는 이해하리라 생각하고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토 안달고 그대로 행하는 믿음이 오늘 하루를 지배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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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주님만 바라보고 살기를 원합니다. 말씀이 이해가 되지않고 상식에 어긋나도 순종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마음속에 탐욕, 권세, 명예와 세상의 가치관이 말살 하여도 또 살아납니다.
    매일 아침 말씀으로 무장하여 세상이 추구하는 부귀영화 가치관을 헤롐 전쟁 으로 이웃과 함께
    나아가 승리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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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여리고성을 점령하는 방법을 알려주었을때, 여호수아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생각해봅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것들을 누가 시켰을때는, 그 시킨 사람과 듣는 사람의 믿음과 관계의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그 행위보다는 그 사람과 관계로 쌓여진 믿음으로 그 일을 하는 것이지요.

    오늘 내 모든 상황에서 나의 머리나 경험으로 의사결정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전지 전능하시며,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오늘도 순종하며 나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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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여리고 성을 함락하는 과정은 일종의 심리전을 보는 듯하고, “성 안에 살아있는 모든 것을 다 (21절)” 죽이는 것에서는 노아 때의 홍수같은 심판의 결과를 보는 듯 합니다. 가나안 땅에서 치룬 첫번째 전투는 유다 백성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습니다. 여리고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다 유다의 칼 아래 쓰러졌습니다. 헤렘의 원리는 오늘 본문을 시작으로 구약에서 여러 번 만나는 개념입니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읽는다, 메타포로 읽는다의 갈등이 일어나게 만드는 원리이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를 “총체적 난국”이라고 표현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어느 한 곳도 위기가 아닌 곳이 없다는 뜻입니다. 죄와 함께, 죄 속에서 사는 우리의 인간 사회는 늘 총체적 위기일 수 밖에 없습니다. 범람하는 강둑을 어린이의 주먹 손으로 막는 것이나 높고 단단한 여리고 성벽을 그저 돌기만 하는 것은 죄 앞에 무력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총체적 타락의 길을 걷는 인간을 그 속에 버려두는 냉정한 결정을 하지 않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헤렘의 “무자비한” 원리는 거룩함의 또다른 얼굴임을 보는 듯 합니다. 무엇인가가 또렷하다는 것은 주변은 다 어둡다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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