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기 3장: 요단 강을 건너다

해설:

여호수아는 백성을 데리고 그동안 진을 치고 있던 싯딤을 떠나 요단 강 근처로 이동합니다(1절). 그곳에서 사흘 동안 머문 후에 지휘관들을 불러 두 가지를 지시합니다. 하나는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들어 메는 것을 보면 진을 철수하여 이동하되 언약궤와 이천 보쯤 거리를 두고 따르라는 것입니다(2-4절). 둘째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는 것입니다(5절). “자신을 성결하게” 하는 것은 옷을 빨고 목욕을 하고 성적 접촉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놀라운 일에 대한 준비입니다. 

때가 되자 여호수아는 제사장들에게 언약궤를 메고 백성보다 앞서 요단 강을 향해 가라고 명령합니다(6절). 요단 강을 건널 아무런 대책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제사장들이 강에 이르면 강에 들어가 서게 하라고 이르십니다(8절). 그렇게 하면 하나님은 모세에게 함께 했던 것처럼 여호수아에게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모든 백성에게 알게 할 이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하십니다(7절).

여호수아는 백성을 모아 놓고,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강물에 닿으면 강물이 멈출 것이고 백성은 마른 땅을 걸어 여리고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합니다(9-13절). 지금 여호수아의 말을 듣고 있던 백성은 홍해를 건너는 기적(출 13-14장)을 말로만 전해 들은 출애굽 2세대입니다. 그들은 말로만 듣던 이적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에 흥분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그 이적을 보고 살아 계신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셔서 그들의 가나안 정복을 가능하게 해 주실 것을 믿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10절). 

당시는 “추수기간”(15절)이어서 강물이 제방까지 차 올라 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요단 강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합니다. 궤를 멘 사람들이 모두 강에 들어가자 여호수아는 멈추라고 명합니다. 그러자 흐르던 물이 멈춥니다. 상류 쪽으로 8 킬로 정도 떨어진 곳에 둑이 생겨서 물길이 멈춘 것입니다(16절). 강 바닥의 흙이 드러나자 이스라엘 백성은 강 서쪽에 있는 여리고 평원으로 건너갑니다. 모두가 건너가기까지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멘 채 땅 위에 서 있었습니다(17절). 

묵상: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강에 들어가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적잖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물살도 강했고, 수심도 깊은 곳은 4미터가 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호수아의 명령에 따라 강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의 발이 모두 강에 들어서자 물의 흐름이 끊깁니다. 그들은 백성이 모두 건너갈 때까지 언약궤를 멘 채 그대로 서 있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짧게 잡아도 한 나절 이상 그렇게 서 있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강을 건넌 것은 모두가 다 지나간 다음의 일이었습니다.

이것이 제사장의 소임이요 운명입니다. 위험이 다가올 때 제사장은 백성보다 먼저 나아가 그 위험을 대면합니다. 백성이 그 위험을 모두 지날 때까지 제사장은 그들의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백성을 위해 섬기도록 부름 받는 것은 엄청난 영예이기는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희생을 의미합니다. 위험한 일에는 가장 먼저 나서야 하고, 좋은 일에는 가장 나중에 그 몫이 주어집니다. 

목사로 부름 받는 것은 제사장처럼 회중을 위한 희생과 헌신을 기쁘게 지는 것입니다. 위험 앞에서는 가장 먼서 나서고, 좋은 일에는 가장 나중에 몫을 받습니다. 회중이 고난 당할 때는 그 고난에 동참합니다. 백성이 모두 지나갈 때까지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있었다는 것은 목사가 회중을 위해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목사만이 아니라 믿는 이들은 모두 “왕과 같은 제사장”(벧전 2:9)입니다. 믿는 사람 하나 하나는 이 세상을 위해 제사장의 직무를 맡은 사람들이고, 교회는 제사장 공동체로서 세상을 위해 존재합니다. 위험한 상황에서는 교회가 가장 앞에 서야 하고, 좋은 일에는 교회가 가장 나중에 서야 합니다. 

이런 목사, 이런 성도 그리고 이런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3 thoughts on “여호수아기 3장: 요단 강을 건너다

  1. 두려워 하지말고 굳세고 용감하라고 하시며 함께하시겠다고 다짐해 주신 하나님을 믿고 2세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끄는 여호수아의 모습을 상기합니다, 물이 불어 뚝방에 가득찬 요단강을 주님의 말씀만을 믿고 건너는 여호수아와 따르는 백성들의 믿음을 통해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을 상기합니다, 어떤 기적이 있기전에 그 기적을 받아 드릴수있는 믿음이 내 안에서도 작동하나를 회상해보며 기적이 일어나면 믿겠다는 선후가 뒤바뀌는 내 자신을 반추하며 부족한 믿음을 자백합니다.
    믿는 자로써 내 자신이 희생에 앞장서고 상 받는 일에는 나중에 서는 하루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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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무슨일을 하던지 말씀을 앞에 모시고 자신을 성결 하게하고 기도로 시작하기를 원합니다.
    위험과 희생이 있더라도 앞서가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먼저 실천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지난날 주님의 크고큰 이적을 기억하고 승리의 소망을 갖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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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오늘 말씀을 코로나 시대의 상황으로 표현한다면 교회가 가장 먼저 문을 닫고 가장 늦게야 문을 여는 ‘차별’을 받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언약궤를 받들고 강물에 들어가야 하는 제사장은 언약궤가 곧 하나님의 현존이요 명령이기에 두려움을 느끼는 한편 운명적인 순종과 일치도 느꼈을 것입니다. 제사장이 보는 요단강과 그들 뒤의 백성이 보는 요단강은 같지 않습니다. 백성은 강바닥이 완전히 마른 상태에서 길을 걷듯 강을 건넙니다. 강 가운데엔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이 서 있습니다. 상징적으로도 대단한 장면입니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는 장면은 영화에서 본 것이 우리의 상상력을 오버라이드 했지만 여호수아서가 그리는 요단강 장면은 언약궤가 가운데 있는 마른 강바닥의 그림입니다. 그 그림 속에서 코로나의 현실이 밑그림처럼 아련하게 보입니다. 코로나 이후의 교회를 말하면서 요단강이 멈춰 선 이야기를 꺼내면 자아도취적 해석이라는 조롱을 받을 수 있지만 요단강 기적 속에 담긴 제사장(교회)의 용기와 순종을 묵상한다면 “a bridge over troubled water” 같은 존재로 사는 것은 사랑의 모습이지 자랑의 수단이 아닐 것입니다. 부활절로 새로와진 분위기 속에서 주님의 명령을 기대하며 “여호와를 위해 자신을 거룩하게 하는 (5절)” 성결과 절제의 훈련을 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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