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4장 36-53절: 추종에서 경배로!

해설:

그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홀연히 방 안에 나타나십니다. 그들은 유령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여 두려워 떱니다(37절).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손과 발을 보여 주십니다 (38-39절). 부활은 혼령이 살아 남는 것이 아닙니다. 죽었던 몸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3차원 공간 안에 갇혀 있던 몸에 변화가 일어나 하나님의 차원으로 이전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손과 발을 확인하고 기뻐했지만 여전히 의혹을 떨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먹을 것을 달라고 하셔서 구운 생선을 잡수십니다(41-43절). 

이어서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나를 두고 기록한 모든 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44절)고 말씀했던 것을 상기시킵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시어”(45절) 성경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성경의 말씀은 성령께서 마음을 열어 주실 때에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의 모든 예언은 ‘그분의 고난, 부활 그리고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는 것’으로 요약된다고 말씀하십니다(45-47절). 그런 다음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49절) 즉 성령을 보내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성령을 받을 때까지 “이 성”(49절) 즉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으라고 하십니다. 

말씀을 끝내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베다니까지 데리고 가셔서 “손을 들어 그들을 축복”(50절)하십니다. 그러면서 그분은 “하늘로 올라가십”(51절)니다. 육신을 입고 인간의 차원으로 내려 오셨던 그분이 다시 하나님의 차원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예수께 경배하고, 크게 기뻐하면서, 예루셀렘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날마다 성전에서 지냈”(51-53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그분의 승천을 목격한 제자들은 그분을 하나님으로 예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제자들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자연적이고 자발적인 반응이었습니다. 부활의 체험이 이토록 중요했다는 뜻입니다.

묵상:

제자들은 삼 년 동안 예수님과 동고동락 했습니다. 함께 먹고 자고 울고 웃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죽은 후에 어느 시점에서부터 제자들이 그분을 “경배”(52절)하기 시작합니다. 고인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신으로 예배 했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그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이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세 가지의 가설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들이 집단적으로 영적 환각에 빠졌다면 그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이후 행적은 환각에 빠진 사람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상적이었습니다. 둘째, 그들이 그렇게 하기로 합의 했다면 그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합의하고 거짓 종교를 시작할 실질적인 유익이 없었습니다. 또한 스스로 조작한 거짓을 위해 생명을 바칠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따라서 세 번째 가설만 남습니다. 즉 그들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어떤 사건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일어난 변화를 거듭 보면서 부활에 대한 확신에 이르렀고, 그로 인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며칠 전까지 그들과 함께 먹고 자던 한 사람을 신으로 경배하기에 이릅니다.

이것이 우리가 전해 받은 믿음입니다. “사도적 신앙”은 사도들이 경험하고 믿게 된 신앙을 말합니다. 그들은 한 인간 예수로 그분을 추종하기 시작했으나 결국 하나님의 아들로 그분을 경배하기에 이릅니다. 우리의 믿음도 여기까지 가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도적 신앙”을 따르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4 thoughts on “누가복음 24장 36-53절: 추종에서 경배로!

  1. 굳게 닫친 돌 문이 열리고 빈 무덤을 보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구세주 하나님임을
    고백합니다. 저희들도 언젠가는 피부색갈 문제와 질병과 마음의 상처와 눈물이 없는 신령한
    몸으로 변화될것을 믿습니다. 이웃과 더불어 새하늘과 새땅의 소망을 세상에 사랑으로
    소개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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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생각했던 제자들의 마음을 이해하며 엇그제까지 함께 성전을 오르내리며 또 주님의 십자가 처형을 획인했던 그들이기에 주님의 부활이 마치 꿈속에 일어난 일같이 느낀 제자들에 동감하지만 이제 영적인 눈을 뜨고 더 이상 선생이 아니고 나의 구세주로 받아들여 내 믿음의 근본으로 주님을 경배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내 믿음의 중심에 자리잡고 그 믿음이 더욱 돈독한 믿음으로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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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살아있는 부활신앙을 간직하기를 기도합니다. 어려서부터 익히 들었고, 알았던 문자적인 하나님이 아닌, 경험하고 체험하는 하나님을 내 삶을 통해서 만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사도들이 받은 놀라운 복음과 신앙이 지금까지 나에게 전해졌고, 또 내가이 놀라운 진리와 살아있는 부활신앙을 다음 세대에 전하기를 기도합니다. 알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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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작년 사순절에는 “우환 독감”이 팬데믹이라는 WHO 발표와 함께 초비상 시국이 시작되었습니다. 3월 중순부터 Stay at Home 행정명령이 시행되어 학교, 교회, 공공기관이 다 문을 닫고 병원과 약국, 마켓 같은 필수업종 비지니스 만 문을 열었습니다. 엘에이 같은 대도시가 텅 비어 우울함과 기괴함이 뒤섞인 세기말적 분위기 속에서 살았습니다. 4월 한 달이 어떻게 지났는지…부활절 예배를 온라인으로 드리긴 했지만 기억 속에 남은 것은 무거운 마음 뿐입니다. 주님께 희망을 두고 기도하며 그저 하루하루 무사히 넘기는 것 말고는 기억의 그물에 걸리는 것이 없습니다. 겨우 1년 전 일이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초유의 사건을 지나면서도 이랬습니다. 시시하고 자잘한 인생살이여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책임이 막강하고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라면 지난 1년의 시간을 책으로 남길 사상과 행동으로 채웠을지 모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의 한 장면이요 또한 유산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목격하지는 않았어도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드뭅니다. 소소한 삶을 살던 사람이나, 산헤드린의 회원으로 사회의 유지였던 사람이나 예수님의 부활 소식의 메아리를 들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부활 사건 이전과 이후로 명확하게 나뉘었는지 아닌지 알 수는 없지만 오늘 나에게 주님의 부활은 중요합니다. 작년 부활절은 올해 부활절과 다릅니다. 나도 다릅니다. 나는 작년의 나를 “이기고,” “열고,” “깨고” 지금 여기 앉아 있습니다. 해마다 성탄절이 오고, 부활절이 옵니다. 표시도 나지 않는 일상의 쳇바퀴를 굴리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 데도 가지 않는 것 같지만 나의 영혼은 주님을 따라갑니다. 이천 년 전에 부활하신 주님이 그 때도 오늘도 평안하냐고 물으십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부활하시어 나를 찾으시고 부르시니 감사합니다. 주님께 답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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