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4장 1-12절: 살아계신 분

해설:

“이레의 첫날”(1절)은 오늘로 하면 일요일입니다. 여인들은 안식일(토요일)이 지나고 동이 트자 무덤으로 갑니다. 누가는 10절에서 그 여인들의 이름(막달라 마리아, 요안나,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을 소개합니다. 그들은 성전 경비경들이 무덤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헛수고가 될 줄 알았지만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놓아 주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의 장례 관습에 따르면 시신을 매장하기 전에 향유를 발라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경우에는 그 절차를 생략하고 매장되었습니다. 여인들은 늦게라도 그분의 시신에 향유를 발라 드리고 싶었습니다.

무덤에 당도해 보니, 경비병들은 온데 간데 없고, 무덤 입구를 막아 놓은 돌이 옮겨져 있습니다(2절). 무덤 안에 들어가 보니 예수님의 시신이 보이지 않습니다. 두 여인이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사이에 눈부신 옷을 입은 두 남자가 나타나 “어찌하여 너희들은 살아 계신 분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찾고 있느냐?”(5절)고 묻습니다. 천사는 예수께서 생전에 하신 말씀을 여인들에게 상기시키면서(7절) 그분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알립니다. 그 때 여인들은 예수님께서 부활에 대해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안심합니다(8절).

여인들은 급히 열 한 제자와 다른 제자들에게 그 소식을 전합니다(9절). 하지만 사도들은 그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11절). 죽은 지 이틀이 지난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베드로는  그 말을 듣고 무덤으로 달려가 사실을 확인합니다. 여인들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확인한 그는 “일어난 일을 이상히 여기면서”(12절) 집으로 돌아갑니다. 

묵상:

기대하지 않았던 어떤 일이 일어나면 현실인지 아닌지를 의심합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일어나면 혼란을 느낍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소식을 접한 제자들의 심정이 그랬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죽은 후에 사흘만에 부활할 것이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런 일이 현실에서 일어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않았습니다. 부활이 있다면 바리새파 사람들이 가르치는 것처럼 종말에나 있을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랬기에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는 사실 앞에서 제자들은 혼란스러워 했습니다. 

그 혼란스러움이 가시고 부활을 믿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들에게 거듭 나타나셔서 당신의 몸을 보여 주시고 말씀을 해 주실 때 그들은 예수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것인지, 그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하나씩 알아 갔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까지 사십 일 동안 지체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역사에 유일회적으로 일어난 부활 사건이기에 그것을 이해하고 믿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랬기에 오늘 우리도 부활이 무엇인지,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달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오래 전에 살다 가신 위대한 성인이 아닙니다. 그분은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 계신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을 찾을 곳은 무덤이 아니라 우리가 매일 일하는 자리입니다. 그곳에서 그분은 우리와 함께 살아 활동하고 계십니다.  

4 thoughts on “누가복음 24장 1-12절: 살아계신 분

  1. 세상에서 가장 멸시하고 저주라고 생각하는 십자가를 온 세상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천대와
    멸시와 수모를 묵묵히 감당하신 주님께 영광과 감사와 존귀를 올립니다. 무거운 바위 돌문을
    넘어 빈 무덤을 항상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감당하신 멸시, 천대, 고난에 조금이라도
    동참하는 믿음이 필요 합니다. 이웃과 함께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십자가를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Like

  2.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 미처 못한 향유를 바르려던 여인들을 상기하며 그들의 정성을 되 새기면서 잠시 숨을 고릅니다, 또 텅 빈 무덤을 보고 당황하며 천사의 말을 믿고 전하는 여인들의 심정을 그려봅니다, 무덤에서 살아나셨다는 현실앞에 혼란에 빠져드는 여인들과 제자들을 상기하며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나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궁금해 집니다.
    주님의 부활을 통해 지금 내 안에 살아계신 주님을 마주하며 그 부활의 능력을 통해 내가 좀더 주님앞에 다가가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하루를 통해 부활의 참 뜻이 이루어지는 하루로 은총이 있기를 간구합니다.

    Like

  3. 아멘!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계셔서 지금도 일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자이십니다. 예수님은 성인 군자중의 한명 혹은 One of the ways가 아닌, Only the way 이십니다.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양하며, 그 부활의 능력이 내 삶 가운데에도 동일하게 있음을 기억합니다!

    Like

  4.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가 눈에 들어옵니다. 모여 있던 제자들은 여자들의 말을 “허튼 소리”로 여기는데 베드로는 무덤으로 달려갑니다. 죄책감 때문에라도 자기를 설명하고 변명할 기회가 필요했을까요. 예수님을 다시 본다면, 한 번 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하고픈 말이 너무나 많은데…심정이었을까요.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는 이 순간이 세컨 챈스였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이상히 여기면서” 집으로 돌아갔다는 누가의 표현 속에서 아기 예수의 일들을 마음 속에 담아둔 마리아도 떠오르고,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느냐 물으러 온 니고데모도 생각이 납니다. 예수님은 답 만 주시지 않습니다. 어찌 해야 할 지 모를 때 지혜를 주시고 문제에서 벗어나게 하시는 것 분명 맞지만 마치 네비게이션처럼 (마법처럼) 나 원하는 것을 즉시 주시지 않습니다. 기도를 하다 보면 뭘 원하는지 모른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이것도 원하고, 저것도 바라는 그런 때도 많고, 원하는 것 조차도 왜 그런지, 주시면 그것으로 뭘 할건지 모를 때도 허다합니다. 이것 저것 늘어놓는 기도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께 하는 기도가 결재서류처럼 깨끗하고 군더더기 없이 잘 만들어진 문건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지러운 창고를 열어놓은 것처럼 이것도 해결해 주세요, 저것은 어떡합니까 하소연을 하는 자리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베드로의 마음에 들어온 작은 희망의 빛, 주님이 곁에 계시다면…이 마음을 나도 갖고 싶습니다. 주님께 나의 부끄러운 모습, 죄송한 마음, 불안과 욕심에 상처 입은 심령을 주께 들고 나가기를 원합니다. 주님, 살아계신 당신은 내 안에서도 죽어 있는 곳에 계시지 않음을 믿습니다. 이미 지나간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기를 원하는 곳에 언제든, 어디든 계십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나를 위해 무덤을 떠나셨으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Like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

<span>%d</span>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