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3장 26-56절: 어둠 가운데 빛을 본 사람들

해설:

총독의 군사들은 예수님을 심하게 고문한 후에 십자가를 지고 처형장까지 끌고 갑니다. 고문에 시달린 예수님이 거듭 넘어지며 지체되자 군사들은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에게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게 만듭니다(26절). 예수님 뒤로는 여자들이 울며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울음 소리를 들으시고 예수님은 돌아서서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두고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두고 울어라”(28절)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에게 참담한 재앙의 날(주후 66년부터 시작된 로마군의 공격)이 다가 올 것을 보고 하신 말씀입니다(29-30절). “나무가 푸른 계절”은 심판이 시작되지 않는 때를 말하고 “ 나무가 마른 계절”(31절)은 심판이 시작되는 때를 말합니다. 

마침내 예수님은 “해골”이라고 불리던 처형장에 당도하십니다. 그 때 다른 두 죄수가 같이 끌려 옵니다. 군인들은 세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고 들어 올립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는 자신을 처형하는데 가담한 군인들 그리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강제한 유대 지도자들을 생각하면서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저 사람들은 자기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34절)라고 기도하십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신 그분은 당신 스스로 그 가르침을 실천하십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군인들은 예수님의 겉옷을 나누어 가지려고 제비를 뽑았고, 유대인들과 로마 군인들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일에 동참합니다(35-38절). 

예수님 옆에 달려 있던 죄수도 그들의 모욕에 가담하여 “너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여라”(39절)고 조롱합니다. 하지만 다른 죄수는 그를 꾸짖습니다(40-41절). 그리고는 예수님께 “주님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42절)라고 말씀 드립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43절)라고 응답하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지 세 시간쯤 지난 정오에 갑자기 어둠이 온 땅을 뒤덮습니다(44절). 하루 중에 가장 밝은 시간에 어둠이 닥친 것입니다. 오후 세 시까지 어둠은 계속 되었고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집니다(45절). 성전 휘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르고 있던 죄의 장벽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으로써 그 장벽이 허물어졌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46절)라고 기도하시고 숨을 거두십니다. 이 기도는 시편 31편 5절에서 온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잠자리에 들 때마다 이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님의 처형을 책임졌던 백부장은 이 모든 일들을 유심히 보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 사람은 참으로 의로운 사람이었다”(47절)고 말합니다. 

산헤드린 의원 중에 요셉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한 산헤드린의 결정에 동조하지 않았습니다(51절). 아리마대 출신의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고 있었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는 빌라도를 은밀히 찾아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어 달라고 청합니다(52절). 빌라도는 예수님이 운명 했는지를 확인하고는 그의 청을 허락합니다. 요셉은 예수님의 시신을 세마포로 싸고 아무도 사용한 적이 없는 돌무덤에 모십니다. 때는 “준비일”(54절) 즉 안식일을 준비하기 위해 집집마다 불을 켜는 금요일 저녁이었습니다(54절). 갈릴리로부터 예수님을 따라다닌 여인들이 그 모든 것을 지켜 봅니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가 향료와 향유를 준비합니다. 요셉이 예수님을 매장할 때 시신에 향료와 향유를 바르는 장례 절차를 생략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안식일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안식일이 지나갈 때까지 그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56절).

묵상:

십자가 처형장에 있었던 사람들을 생각합니다. 우연히 지나가다가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게 된 구레네 시몬은 그 일로 인해 나중에 초대 교회에서 중요한 인물이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 중 하나는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알아 보고 회개합니다. 예수님을 처형하는 일을 책임졌던 백부장은 형 집행 중에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깨닫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위험을 무릅쓰고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신을 내어 달라고 청을 넣습니다. 십자가 처형 장면을 멀리서 지켜 보았던 여인들은 향유와 향료를 준비합니다. 

예수님이 재판을 받고 십자가 처형을 당하는 동안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을 불행한 나날의 반복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군사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사람 청소’의 과제를 무심코 수행했을 것이고, 지나가는 행인들은 또 한 사람의 불행한 죽음을 보고 혀를 찼을 것입니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영원의 빛을 보고 그 빛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자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찾아 행합니다. 그로 인해 예수님의 구원 사역은 완성되었고, 십자가의 의미가 우리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오늘도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아 보는 사람들은 절대 소수입니다. 절대 다수의 사람들은 무심히 어제와 같은 일상을 오늘 반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을 알아 본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을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찾아 신실하게 행합니다. 우리는 구레네 시몬이고, 예수님을 영접한 강도요, 백부장이며, 아리마대 요셉이고, 여인들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오늘도 그런 사람들을 통해 당신의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4 thoughts on “누가복음 23장 26-56절: 어둠 가운데 빛을 본 사람들

  1. 주님을 옳게 보고 깨닫는 소수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핍박하는 사람보다 신자라고
    또 동양인이라고 핍박받게 하시는 주님의 뜻을 침묵으로 반응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빈 무덤을 항상 생각하고 부활의 소망을 이웃과 함께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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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십자가의 고통 속에서도 자기를 고소하고 비난하며 조롱하는 무리를 향해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을 용서해 달라고 부르짓는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해 봅니다, 원수까지도 일곱번에 일흔번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실현되는 현장을 그려보며 나 자신의 비굴함과 연약함을 반성합니다.
    형장에 따라가서 끝까지 증인이 되는 여인들 같은 믿음을 구하며 마지막 순간에 주님을 받아들이는 죄수같은 혜안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도 엄숙한 하루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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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예수님의 탄생부터 십자가의 사건과 부활의 사건은 논리적으로는 설명이 되어지지 않는 사건들입니다. 그 놀라우신 일들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인 것은 더더욱 놀라운 일이며,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 놀라운 일들을 세계 곳곳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찾고, 나도 그 사역에 조금이나마 동참하기를 기도합니다.

    이 복된 소식이 제 마음을 울리기를 기도합니다. 단순하게 역사적 사실이나 혹은 교리의 일부분으로만 한정되어 무미건조하게 내 삶에 다가오지 않고, 놀라우신 하나님의 계획과 사랑을 뜨거운 가슴으로 받아서, 하나님에 대한 첫사랑을 회복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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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예루살렘의 몰락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들은 지 33년 쯤 뒤에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이 3,40대의 청장년이라면 그들이 노인일 때는 차라리 산과 언덕이 무너져 자기들을 덮어버려 순식간에 죽었으면 좋겠다고 바랄 정도로 비참하고 절망스러운 시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로마에 대항해 자유를 되찾을 능력이 안되는 군중, 로마에 의지해 일상을 유지하는데 바쁜 지도자들… 이천년 전 유다 땅의 상황이나 일본 제국주의 광풍을 겪는 조선의 상황이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개인의 차원이나, 사회와 국가의 범주에서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은 생존의 높고 두꺼운 벽에 부딪치지 않고는 얻을 수가 없습니다. 목숨을 부지하는 일이 우선인 것은 맞지만, 살고 죽음이 내게 달린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기억한다면 늘 ‘살아남기 위해서’라는 알리바이 뒤로 숨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조롱한 군인과 군중은 그렇게 자신의 무력감을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들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그가 찔림을 당하든 모욕을 받든 자기의 인생과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한 켠에는 우연히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된 시몬이 있습니다. 우연히 예수님 곁에서 십자가에 달린 강도도 있습니다. 잠시라도 ‘이게 무슨 뜻일까’ 묻는 사람은 예수님과 자기가 상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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