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2장 54-71절: 이분이 누구신가?

해설:

성전 경비병들은 예수님을 연행하여 대제사장 관저로 향했고, 제자들은 모두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54절). 베드로만 몰래 그 뒤를 따라 갑니다. 베드로가 뜰에 있던 사람들 틈에 끼어 불을 쬐고 있는데 어떤 하녀가 베드로를 알아 봅니다. 베드로는 황급히 부인하는데, 조금 뒤에 다른 사람도 같은 말로 베드로를 압박합니다. 베드로는 다시금 그의 말을 부인합니다. 그렇게 지나가는 줄 알았는데, 한 시간쯤 후에 또 다른 사람이 베드로의 갈릴리 액센트를 거론하면서 또 한 번 압박합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더욱 강경하게 부정합니다. 그 때 멀리서 닭이 웁니다(56-60절).

그 때 뜰 위에 있던 예수님이 돌아서서 “베드로를 똑바로 보셨”(61절)습니다. 그 눈빛은 사랑과 연민의 눈빛이었을 것입니다. 그분은 그런 일이 있을 줄 미리 아시고 그를 위해 기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31-32절). 예수님과 눈이 마주친 베드로는 몇 시간 전에 그분이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바깥으로 나가 “비통하게”(62절) 웁니다. 

성전 경비병들과 구경꾼들은 재판이 시작되기 전까지 예수님을 여러 가지 말과 행동으로 희롱합니다(63-65절). 그들의 눈이 어두워져 있어서 그래도 될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윽고 날이 밝고 산헤드린 공의회가 소집되었습니다(66절). 산헤드린 의장인 대제사장 앞에서 정식 재판이 시작되자 그들은 예수님에게 “그대가 그리스도요?”(67절)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그 질문에 대한 직답을 회피하십니다. 그렇다고 대답해도 그들이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대신 “그러나 이제부터 인자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오른쪽에 앉게 될 것이오”(69절)라고 답하십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지상의 임금으로서의 메시아가 아니라 온 세상의 영원한 통치자(메시아)로서 높임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대가 하나님의 아들이오?”라고 묻습니다(70절). 예수께서는 그 질문에 대해 부정하지 않으셨고, 그들은 총독에게 넘겨 예수님을 사형시키기로 결정합니다.

묵상:

바울 사도는 “나는 내가 믿어 온 분을 잘 알고 있습니다”(딤후 1:12)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를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 섰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영원한 왕이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그분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쳤습니다. 그는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습니다”(딤전 1:13)라고 고백합니다. 그랬던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모두 달아났을 때 대제사장의 뜰에까지 잠입해 들어간 베드로는 대단한 모험을 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정체를 묻는 질문에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그에게 예수님은 아직 인생을 걸만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역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성령의 선물을 받은 후에 그분에게 인생을 바칩니다. 그로 인해 그도 역시 순교자의 반열에 오릅니다. 

죄인의 신분이 된 예수님을 함부로 다루며 모욕을 주고 폭행을 가한 사람들도 역시 그분이 어떤 분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도 그분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니, 알아 보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 그들 나름대로 규정하고 빌라도 총독에게 고발할 구실만 찾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분은 그들의 신문에 침묵으로 일관하십니다. 그분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았다면 자신들이 얼마나 큰 죄를 짓고 있는지 알고 떨었을 것입니다.  

4 thoughts on “누가복음 22장 54-71절: 이분이 누구신가?

  1. 사실 베드로를 비겁한 주님의 수 제자라고 비난할수가 없습니다, 저도 베드로와 같이 예수님은
    그리스도 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그러나 생명이 위험한 상황에서
    주님과 한패라고 비난을 당 하면 성령님의 도움없이는 비굴하게 될것 같습니다. 전적으로 주님만
    의지합니다, 도와주십시오! 결정적인 시간에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용기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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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세번이나 부인하는 베드로를 통해 내 자신을 깨닫으며 연약한 믿음을 직시합니다, 위험에 처했을 때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하고 나설수 있는 믿음을 추구합니다.
    대 제사장 앞에서도 그들을 미워하기 보다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려는 십자가의 사랑을 묵상해 봅니다, 그 사랑으로 나도 주님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됐음을 감사하며 주님의 길을 따라 갈 수있는 믿음을 구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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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성경이 보여주는 여러 인물들의 행동은 우리도 그렇게 했을만한 행동이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 우리라면 절대 못할 것 같은 일이기도 합니다. “저렇게 하면 안되겠다”는 행동도 있고, “어떻게 하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감탄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 부인한 일은 주님에 대한 배신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부인과 배신이기도 합니다. 주님과 함께 한 시간을 지워버린 답이고 주님의 사랑을 내동댕이친 행동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이 사건에 갇히지 않고 인생을 다시 삽니다. 이 사건 때문에라도 다시 살아야 할 이유가 있다는 듯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게 됩니다. 살면서 나 자신에게 실망하는 때가 허다하게 많습니다. 잘못 생각하고 말한 일들, 어리석은 행동과 판단의 파장이 그 때 뿐 아니라 두고두고 후회와 아픔을 주는 일이 있습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도 지금 보이는 것에 묶여 외상으로 물건을 사듯 걱정부터 끌어다 하기도 합니다. 주님을 주님으로 바로 알고 사랑한다면 나의 상한 마음을 고치시는 분도 주님이심을 잊지 않을 수 있을텐데…고난주간을 지내며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주의 사랑 속에 깊이 잠기어 나는 잊고 오직 주님의 사랑 만 느끼기를, 오직 주님 만으로 채워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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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인생에서 나의 정체성을 알고,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아는 사실은 정말 중요합니다. 고난주간동안 주님을 더욱더 알기원합니다. 사도바울처럼, 베드로처럼 내가 누구인지 알고,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합니다. 죄인중의 죄인이라는 고백이 나오는 오늘 아침입니다. 주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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