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2장 24-38절: 모두가 왕이 되는 나라

해설:

그 자리에서 제자들 사이에 다툼이 생겼습니다. 다툼의 원인은 “누구를 가장 큰 사람으로 칠 것이냐”(24절)의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고난 받고 죽을 것을 예고하시는데, 제자들은 예수께서 세우시는 왕국에서 누가 제일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인가를 두고 다툰 것입니다. 그것을 아시고 예수님은 이 세상 질서와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대조하여 말씀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는 높은 자리에 앉는 사람이 큰 사람으로 대접 받는데, 하나님 나라에서는 낮은 자리에 앉는 사람이 큰 사람이라고 하십니다(25-26절). 예수님이 섬기는 사람으로 그들 가운데 있는 것처럼(27절) 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신과 함께 시련을 같이 했으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주신 왕권을 그들에게도 주실 것이라고 하십니다(29절). 그 왕권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속한 것입니다. 그분은 또한 “너희가 내 나라에 들어와 내 밥상에서 먹고 마시게 하고, 옥좌에 앉아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하겠다”(30절)고 하십니다. 제자들에게 이 말씀은 지상 왕국을 세울 것이라는 말로 들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당신이 다시 오실 때 세워질 영원한 나라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시몬아, 시몬아”(31절)라고 두 번 부르는 것은 애정을 담은 표현입니다. 시몬은 베드로의 히브리 이름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장차 사탄이 베드로를 넘어뜨릴 것이지만 그 실패로부터 회복되도록 그를 위해 기도했다고 말씀하십니다(31-32절). 그러니 회복되고 나면 “네 형제를 굳세게 하여라”(32절)고 부탁하십니다. 이 말씀에 베드로는, 감옥에 가더라도 혹은 죽는 자리에 이르더라도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합니다(33절).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 밤 새벽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예고해 주십니다(34절). 베드로는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잊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돈주머니와 자루와 신발이 없이 내보냈을 때에,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더냐?”(35절)고 물으십니다. 제자들이 없었다고 답하자, 그분은 “이제는 돈주머니가 있는 사람은 그것을 챙겨라. 또 자루도 그렇게 하여라. 그리고 칼이 없는 사람은, 옷을 팔아서 칼을 사라”(36절)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고난의 종에 대한 예언의 일부(사 53:12)를 이루기 위한 명령이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칼 두 자루를 보여드렸고 예수님은 “넉넉하다”(38절)고 답하십니다. 예수께서 결투를 위해 무기를 준비하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그는 무법자들과 한 패로 몰렸다”(37절)는 예언을 이루기 위해 그렇게 말씀하셨다는 사실이 여기서 분명 해집니다.

묵상:

예수께서는, 당신의 나라에서는 모두가 왕노릇 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왕권이 모두에게 주어지면 왕이 다스릴 백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그 나라에서는 모두가 서로를 섬기기 때문입니다. 땅의 나라에서는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 위에 군림합니다. 서로가 높아져서 더 많은 사람을 다스리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의 타락한 본성입니다. 그렇기에 땅의 나라에서는 오직 한 사람만이 왕의 자리에 군림하고 나머지는 그 왕의 다스림 아래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서로가 낮아져서 서로를 섬기고 싶어합니다. 우리의 죄된 본성이 치유되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 나라에서는 모두가 왕이 되는 것입니다. 법이 필요 없고, 정치도 필요 없습니다. 모두가 사랑을 따라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 나라는 칼과 창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무력으로도, 권력으로도, 혹은 금력으로도 세울 수도 없습니다. 그 나라는 오직 사랑으로만 세워집니다. 우리의 한계적인 사랑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하나님에게 있는 절대적이고 영원하고 완전한 사랑으로만 세워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그 절대적이고 영원하며 완전한 사랑을 전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의 희생을 통해 그 사랑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그분의 나라는 십자가의 나라입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스스로 낮아져서 서로를 섬기는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그 나라를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 때가 이르기까지 이 땅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를 사는 것, 그것이 매일 우리가 할 일입니다.  

4 thoughts on “누가복음 22장 24-38절: 모두가 왕이 되는 나라

  1.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서 우리의 사고와 생각, 그리고 행동이 변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나라의 왕권을 가지고 스스로 섬기는 것만 생각한다는 사실에 도전을 받습니다. 자신의 위치나 권리를 내세우는 나라가 아니라, 서로 더 섬기기 위해서 고민하며 행하는 나라, 이 것이 하나님의 나라임을 기억하고, 가정가운데, 교회가운데 사회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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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세상의 권력에 눌려 힘없이 사는 평민들에게 하늘나라의 속성을 알려주시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이루어지겠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께 귀를 기울입니다, 하나님의 본성인 사랑이 오는 세상뿐만 아니라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간구합니다.
    내 믿음이 연약하고 흔들릴 때 베드로에게 주신 그 믿음을 주님께 구하며 무법자들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을 묵상하며 자신을 성찰하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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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유월절 식사의 자리에서 예수님은 계속해서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시고 설명하십니다. 땅에 있는 강대 제국의 역사만 알고 살던 제자들에게 이 말씀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유다는 물론 ‘세상의 중심’처럼 군림하던 로마 마저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을 아는 우리도 하나님의 왕국을 전혀 다른 관점에서 보는 것이 어렵기만 합니다. 섬김에 대한 여러 말들이 있습니다. 섬김을 제자 훈련의 핵심으로 만든 교회 프로그램도 많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곧 이웃을 섬기는 것”이라고 축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섬김-serve의 뜻이 하나님과 이웃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이 왕이심을, 그분의 명령을 받들어 순종한다는 의미의 섬김이고, 이웃을 섬긴다는 것은 이웃을 돕는다, 편하게 한다, 받든다의 뜻입니다. 이웃을 하나님 대하듯 한다 또는 하나님이 이웃의 모습으로 내 앞에 계신다고 생각한다는 말도 다 맞지만 이웃이 곧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어떤 면에선 이웃=하나님 이라고 믿어진다면 크고 작은 분쟁과 다툼이 다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미국 하원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테즈 (AOC) 의원이 있습니다. 젊은 여성의원입니다. 2018년에 뉴욕구 연방하원으로 선출되어 역사상 최연소로 국회의원이 되었다는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국회에 들어가기 전까지 웨이트레스와 바텐더 일을 했습니다. 그는 자기를 반대하는 동료 의원들이 (공화당 의원이겠지요) 종종 “다시 웨이트레스 자리로 돌려 보내야겠다” 고 비아냥 대는데 그건 마치 마치 웨이트레스 일이 나쁘거나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본인의 생각을 드러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국회의원이 웨이트레스보다 태생적으로 나은 (better) 사람이라고 생각하나본데, 국회의원은 섬기는 자리이지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But our job is to serve, not rule.” 이라고 명쾌하게 반박합니다. 오늘 말씀에 적절한 응답 같습니다. 직업이 곧 그 사람의 전부인 것처럼 여기는 문화권에서는 배운 사람, 높은 자리, 귀한 배경/연고 등이 훨씬 더 좋은 (better) 인생이라고 여깁니다. 열이면 아홉의 경우, 머리 싸매고 공부해서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들어가려는 것은 섬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섬김을 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입니다. 좋은 대접을 받는 자리를 원해서입니다. 직업이 아니라 정신과 태도, 성격과 습관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면 우리 중심에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계셔야 합니다. “나는 섬기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 있다 (27절)” 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시는 예수님… 대접 받기를 기대조차 하지 않는 어린아이와 고아, 과부를 닮게 하소서. 하나님의 나라에선 오직 하나님 같은 마음으로만 살 수 있음을 알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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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매일 아침 낮아지고 섬기고 말씀에 순종 하려고 노력하지만 남과 비교하고 높아지려고
    하는 욕망이 끊이지않고 꿈틀거립니다. 성령님의 인도가 아니고는 불가능 합니다.
    주님의 강한 채찍과 막대기와 지팡이를 원합니다. 채찍도 주님의 사랑과 은혜임을
    깨닫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좁고 험한길이 성령님이 함께하시면
    기쁨과 축복임을 깨닫고 이웃과 더불어 걷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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