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0장 1-19절: 선민의 실패

해설: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장로들과 함께”(1절) 예수께 와서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합니까?”(2절)라고 묻습니다. 성전에서 예수께서 하신 행동과 말씀들은 유대교 신앙의 뿌리를 흔드는 것이었음을 그들은 알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세례 요한을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십니다(3-4절). 그들은 그렇다고도, 그렇지 않다고도 답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라고 답하면 왜 그를 믿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고,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 그를 존경하고 있던 무리로부터 원성을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5-6절). 그들은 모른다고 답했고, 예수님도 답하지 않겠다고 하십니다(7-8절).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 알고 싶어서 그렇게 질문한 것이 아님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둘러 서 있던 무리에게 비유를 하나 들려 주십니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고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멀리 떠났습니다(9절). 포도원은 하나님의 선민으로서의 자격을 말합니다.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을 말하고, 농부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뜻합니다. 때가 되어 소작료를 받으려고 종을 보냈는데, 농부들은 그를 때려 빈손으로 돌려 보냅니다(10절). 소작료는 선민으로서 맺어야 할 열매를 뜻합니다. 보냄 받은 종은 예언자를 의미합니다. 주인은 거듭 종을 보내지만 농부들을 그 종들을 배척하고 박해 했습니다(11-12절). 그러자 주인은 자기의 아들을 보내기로 결정합니다(13절). 아들에 대해서는 다른 대접을 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만, 농부들은 포도원을 영원히 차지할 욕심으로 그 아들을 포도원 바깥으로 내쫓아 죽입니다(14-15절). 

이 비유 끝에 예수님은 “그러니 포도원 주인이 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15절)고 물으신 다음, 곧바로 답을 주십니다. “주인은 와서 그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다”(16절).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던 선민의 자격이 박탈될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16절)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시편 118편 22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그 일은 하나님께서 이미 정하신 일이라고 답하십니다. “집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듯”,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거부 당하고 죽임 당하겠지만 하나님께서 구원자로 세우실 것입니다. 그렇기에 “누구든지 그 돌 위에 떨어지면, 그는 부스러질 것이요, 그 돌이 어느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 것”(18절)입니다. 율법학자들과 대제사장들은 자신들을 두고 한 비유인 줄 알고 예수님을 잡으려 했지만 백성이 두려워 손을 대지 못합니다(19절).

묵상:

하나님께서는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택하셨습니다. 그들을 제사장의 나라로 만들어 세상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이집트로부터 해방시키시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선택을 ‘책임’과 ‘의무’가 아니라 ‘특권’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선민으로 택함 받을 장점이 있어서 그들을 택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셨습니다(신 7:7-8).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을 특권으로 여기고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그로 인해 선택 받은 민족으로서 거룩함을 추구하는 일에는 소홀히 하면서 율법과 할례와 제사를 자랑했습니다.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보내어 그들에게 회개하고 거룩함의 열매를 맺으라고 촉구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고 예언자들을 박해 했습니다. 성경에 이름을 올린 예언자들은 모두 배척과 혐오와 박해로 고통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해 예언하신 대로 당신의 아들을 보내십니다. 예수님은 예언자들에게서는 볼 수 없었던 놀라운 이적을 행하고 권위있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분의 말도 듣지 않고 배척하고 마침내 죽음에 이르게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로부터 선민의 자격을 빼앗아 버릴 것입니다.

이 비유를 들으면서 율법학자들과 대제사장들은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16절)라고 응답합니다. 그것은 마음에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들은 속으로 예수님을 잡아들일 구실과 기회만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회개로 응답하기에는 가진 것과 누리는 것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그들의 완고한 마음으로 인해 예수님이 예언한 일은 결국 일어났고, 그로 인해 선민의 자격은 아브라함의 혈통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누구나 아브라함처럼 믿어서 의롭다 함을 얻는 사람은 모두 선민이 됩니다(롬 4장). 

4 thoughts on “누가복음 20장 1-19절: 선민의 실패

  1. 이스라엘 백성이 왜 선민의 자격이 박탈 당하고 전 인류를 위한 제사장의 직분을 빼앗긴 당시를 회상하며 끝까지 예수님을 배척한 당시를 회상합니다.
    그로인해 성경대로 죽임을 당하시고 다시 살아나야 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을 상기하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게됩니다, 부활주일을 맞이 할 마음의 준비를 하게하시고 십자가의 고통과 3일간의 고요함에 동참하는 마음가짐을 갖기를 원합니다.
    오늘하루도 십자가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엄숙함이 유지되기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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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맡겨주신 친족 들이 주님의 종들과 아들에게 지혜있고 충성된 청지기로 섬기지 못했습니다.
    친족들 모두가 아들이 구세주 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임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고 주님의 부활을 확신하고 그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필요합니다.
    너무 늦기전에 깨닫고 다시오시는 주님을 진심으로 준비하는 포도원 같은 친족 들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이웃과 함께 깨어서 그때를 기다리며 준비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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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회개하라는 말씀이 자기들을 향한 말씀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뿐 아니라 구약의 여러 곳에서 지도자의 잘못을 책망하고 경고하는 말씀이 있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회개하지 않고 살던대로 계속 삽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없앨 방법을 찾는 데 힘을 모았습니다. 지도자와 선생의 위치는 아래를 내려다 보는 위치입니다. 자기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남들이 자기를 치켜 세워주기 때문에 시선을 늘 밑으로 두게 됩니다. 하나님을 잊고 삽니다. 십년 전 쯤만 해도 한국 뉴스, 특히 정치와 사회 관련 뉴스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읽는대로 다 믿을 것은 아니어서 균형있게 보려는 노력은 늘 해야 하지만 사건 자체를 못 따라 가는 일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요즘에는 모르겠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사실이냐 아니냐를 모르겠는 것은 물론이요 무슨 소리를 하는 지 조차 이해 못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미국에서도, 이제는 한국에서도 주변인이 되었다는 것을 봅니다. 이민자로 산다는 것은 주변인으로 산다는 것과 같습니다. “보다 나은 삶”의 구체적인 모습이 어떠하든 더 나은 삶을 위해 다른 곳으로 이주해 산다는 것은 중심으로부터 더 멀어지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삶의 지향점을 사회적인 자리매김이 주는 안정과 권리에 맞추면 이민자는 그 목표를 이루기가 더욱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아이러니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복음으로 받은 사람들은 결핍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모자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태생적으로, 혹은 떠밀려서 사회의 변방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크리스찬으로 산다는 것은 중심에 서는 것을 기꺼이 포기한다는 뜻인지 모릅니다.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만 회개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변방에서 중앙으로 들어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자꾸 커져서 하나님을 잊게 될 때, 회개할 때입니다. “더 나은 삶” 자체가 죄일 수는 없습니다. 삶의 목적과 이유가 무엇인지 성찰하지 않으면서 “더”만 붙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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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하나님의 자녀로 사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믿기만 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칭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많은 것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 특권이 나에게 온 것이 아님을 기억합니다. 오직 은혜로 믿음으로 되었음을 가끔은 잊고 사는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 내가 누구인지, 청지기로서의 정체성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여러가지 삶의 기준들과 정체성들로 인해서 혼잡한 시대를 살 고 있습니다. 오늘도 확고한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정체성으로 청지기의 삶을 살아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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