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8장 28-48절: 심판하시는 하나님

해설:

예수께서는 여리고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하십니다. 드디어 일행은 시온 산 맞은 편 올리브 산에 이릅니다(28-29절). 올리브 산에 있던 벳바게와 베다니 마을에 이르자 예수님은 두 제자를 “맞은쪽 마을”(30절)로 보내시면서 그곳에서 아무도 타 본 적이 없는 새끼 나귀가 매어 있는 것을 보거든 끌고 오라고 하십니다. 이미 누군가를 통해 나귀를 준비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스가랴 9장 9절의 예언을 따라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새끼 나귀를 끌고 와서 옷을 그 위에 얹어 놓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나귀에 올라타고 산을 내려가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가는 길에 자신들의 옷을 깔아 놓습니다. 그것은 왕의 행차를 상징하는 행동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올리브산 끝자락에 이르러 시온산으로 향하자 “제자의 온 무리가 기뻐하며, 자기들이 본 모든 기적을 두고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37절) 예수님을 높입니다. 갈릴리에서 드러내 보이셨던 그 놀라운 이적의 능력으로 예루살렘에서 로마 군을 몰아내고 위대한 다윗 왕국을 재건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새끼 나귀를 타신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소동이 일자 바리새파 사람 몇이 예수님께 제자들을 꾸짖어 조용히 시키라고 권고합니다. 로마 군인들이 알았다가는 엄청난 희생을 보게 될 것을 두려워 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를 것이다”(40절)라고 답하십니다. 지금 누구도, 어떤 힘으로도 막을 수 없는 중대한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시온산과 올리브산이 만나는 계곡에서 시온산 정상에 세워진 예루살렘 성을 쳐다 보시면서 우십니다(41절). 예루살렘 성에 장차 일어날 일을 내다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평화에 이르게 하는 길”(42절)을 알지 못했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요청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44절)를 알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이 당할 재앙을 예언 하시는데(43-44절), 그 예언이 66년부터 시작된 유대 전쟁으로 인해 70년에 이루어집니다. 때를 알지 못하는 것 그리고 때에 맞는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이 이토록 큰 불행을 낳습니다.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곧바로 성전으로 향하십니다. 예루살렘이 예루살렘인 이유는 성전 때문입니다. 그분은 성전 뜰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십니다(45-46절). 그것은 성전에서 더 이상 제사를 드릴 수 없는 날이 이를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날마다 성전에 오셔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을 없앨 모의를 짜고 있었지만, 백성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좋아 했기에 어쩔 방도를 찾지 못했습니다(47-48절).

묵상: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있어서 예루살렘은 특별한 도시입니다. 그곳에 성전이 세워질 때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당신의 이름을 두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온 천하에 두루 계시지만,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지리적으로 보자면 절대로 번성할 수 없는 위치에 있던 예루살렘은 세계의 중심이 되었고 우주의 배꼽이 되었습니다.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환상(40-48장)이 말하는 것처럼, 예루살렘 성전은 온 세상을 살게하는 생명수를 흘러 내보내는 곳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이며, 예루살렘에 성전을 두신 이유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성전의 샘물은 말라 버렸고 도둑의 소굴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가 아니라 ‘불화와 분쟁의 도시’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 상태를 되돌리기 위해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보내셨지만, 종교 권력자들은 그들을 박해하고 살해했습니다. 이스라엘도, 예루살렘도, 성전도 회개의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이제는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는 심판만이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실을 미리 아셨고, 그로 인해 올리브 산에서 예루살렘을 내려다 보면서 슬피 우셨습니다. 

그 심판은 주후 70년에 로마 군대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그 이후로 예루살렘은 지구의 화약고로 남아 있습니다.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고개 숙여 기도하는 아침입니다. 

3 thoughts on “누가복음 18장 28-48절: 심판하시는 하나님

  1. 십자가의 날을 향해 한발 한발 내 디디는 예수님의 행적을 그려봅니다, 오리브 산에서 내려다보며 심기가 불편 하셨던 옛구님, 그 성전을 향해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눈물을 통해 심판의 날을 상상해 보지만 마지막 순간 까지 백성들을 가르키며 복음을 전파하는 예수님의 참 모습을 상상해 봅니다.
    육신의 마지막 날까지 주님의 가르침을 소화하며 따르는 제자로 성장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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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마지막 시간을 깨닫는 분별력을 원합니다. 너무 늦기전에 회개하고 세상의 모든것을 정리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가정과 교회가 재물의 노예가 되지말고 주인이 되어 선교와 구제에
    전심전력 하기를 기도합니다. 권세와 힘의 메시아가 아니고 나귀새끼를 타신 사랑과 구원의
    메시아를 깨닫고 이웃과 함께 온 몸으로 모시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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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예루살렘을 바라보시고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41절). 오늘도 여러 나라와 도시가 주님을 울게 합니다. 아프가니스탄, 예멘, 수단, 시리아, 미얀마, 홍콩… 세상에 알려진 싸움은 물론이요 어둠 속에 버려진 도시 속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의 숫자는 셀 수도 없을 것입니다. 미국에서도 매일 눈물 흘릴 일들이 일어납니다. 아시아인들이 받는 수모와 고통이 수면 위로 들어나고 있습니다. 아틀란타의 총격 사건이 피해자들의 개인 비극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성이 제 목소리로 제 삶을 말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은 깨끗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육신에 들어온 질병을, 정신을 혼란케 하는 귀신을 몰아내어 주십니다. 성전 마당이 돈 거래로 바쁜 것을 야단치시고, 정성이 없는 제사를 나무라십니다. 주여,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소서. 고통을 겪는 이웃, 화목하지 않은 이웃을 그대로 둔 채 주님 앞에 나가지 않게 하소서. 주여 우리의 도시를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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