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8장 18-43절: 물질과 믿음

해설:

“어떤 지도자”(18절)라는 말은 산헤드린 의원과 같은 권력자를 가리킵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대를 이어 권력과 부를 누렸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에게 찾아와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라고 여쭙니다. 권력과 부에 더하여 영생까지 가지고 싶어했던 것입니다. 그에 대한 대답으로서 예수님은 십계명 중에서 인간 관계에 관한 계명들을 언급 하십니다(20절). 그는 “나는 이런 모든 것은 어려서부터 다 지켰습니다”(21절)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22절)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리하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22절)고 덧붙이십니다. 그 말씀을 듣고 그 지도자는 “몹시 근심”(23절)하였습니다. 

그의 반응을 보시고 예수님은 “재물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25절)고 말씀하십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부를 의로운 삶에 대해 하나님이 부어주신 축복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믿고 있던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충격적으로 들렸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26절)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부자가 된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가난한 사람은 더 더욱 가망이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일이라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27절)고 답하십니다. 구원은 인간이 무엇을 행하여 얻어낼 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이 말씀에 베드로가, 자신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르고 있다고 반응합니다(28절). 그러자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식을 버린 사람은, 이 세상에서 여러 갑절로 받을 것이고, 또한 오는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29-30절)라고 답하십니다. 여기서 “버리다”라는 말은 관계를 끊고 모든 책임을 버린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우선에 두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우선하기에 실제로 가족을 떠나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족과 함께 살면서 우선 순위를 하나님께 두고 살아야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럴 경우 하나님께서 넉넉히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이 즈음에 예수님은 당신이 예루살렘에서 당할 일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인자를 두고 예언자들이 기록한”(31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통해 이루기로 계획하신 일을 이루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예언대로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흘째 되는 날”(33절)에 살아날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메시아에게 바라던 일과 너무도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일행이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어떤 눈 먼 사람이 길가에 앉아 구걸을 하고 있다가 예수께서 지나 가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는 소리를 질러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38절)라고 간청합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습니다. 하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호소합니다. 예수님은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 오라고 하신 다음, “내가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느냐?”고 물으십니다(41절). 그러자 그는 “주님, 내가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41절)라고 답합니다. 그는 비록 구걸하여 먹고 사는 사람이었지만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셨고,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43절).

묵상:

“땅의 기름진 복과 하늘의 신령한 복”–이것은 한국 교회에서 축복 기도를 드릴 때 자주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기름지게 먹고 살다가 죽어서 영원하고 신령한 복을 누리게 해 달라는 기도이니, 듣는 사람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주기에 충분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의도하신 것이고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일어나기를 원하시는 일입니다. 하지만 인간의 죄로 인해 창조질서가 깨어졌고, 인간 사회는 아귀다툼의 전쟁터가 되어 버렸습니다. 모두가 나누면 넉넉하고도 남을만큼 하나님은 모든 것을 허락 하셨는데, 인간의 욕심으로 인해 약육강식의 세상이 되고 부와 가난이 대물림 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미국으로 따질 때, 상위 1%에 속하는 사람들이 미국 전체 부의 20%를 소유하고 있다는 통계가 그 증거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공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상위 계층에 속하는 것을 목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이런 세상에 살면서 “땅의 기름진 복과 하늘의 신령한 복”을 모두 누리려는 것은 죄요 욕심입니다. 믿음을 통해 “하늘의 신령한 복”을 누리고 있고 장차 그것을 영원한 유업으로 받을 것을 소망한다면, 이 땅에서는 덜 가지고 덜 먹고 덜 쓰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물질을 넉넉하게 주셨다면, 그 물질을 주신 분의 뜻에 따라 사용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또한 자신이 활동하는 영역 안에서 경제 정의가 실현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자랑할 것은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나누었느냐”입니다. 우리 믿음의 수준을 보여 주는 것은 은행 잔고의 액수가 아니라 기부금 영수증의 액수입니다.   

4 thoughts on “누가복음 18장 18-43절: 물질과 믿음

  1. 인류역사의 전 과정을 보면 좀더 많은 것을 갖고 높은 지위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며 승자의 무자비한 착취와 탄압과 또 노예제도를 통해 인간들간의 불화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을 기억합니다, 일단 죄의 본성이 들어 온 후로 하루도 편한 날이 없는 갈등의 현실속에서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일상을 통해 먼저 무엇을 구해야 할찌 분명히 말씀해 주셨지만 내 안에서 발동하는 죄의 속성이 문득문득 고개를 처들곤 합니다.
    하늘나라의 의가 오늘 하루를 지배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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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금 처한 문제 앞에, 무엇이 제일 우선순위가 되어 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고 기도를 합니다. 내 앞에 처한 상황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우선순위가 잘못되어있음을 깨닫습니다. 마치, 본문에 나오는 젋은 부자의 이야기처럼, 나에게 부족한 것, 인생의 우선순위가 잘 못되어있음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궁휼을 구합니다. 내 인생의 소망이요 온전히 나아가야 하는 그 길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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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주님을 먼저 생각하는 우선순위를 원합니다, 무엇보다 하늘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를 분토로 여기는 믿음을 기도합니다.
    영의 눈이 밝아지고,영적인 생각이 항상 깨어있어 말씀의 뜻을 옳바로 깨닫게 하시고,
    주님께서 받으신 누명과 배반과 수모와 고통과 세상의 모든죄를 지시고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중보자로 계시다가 다시오셔서 새하늘과 새땅을 이루시고 새로운
    몸으로 사는 소망을 이웃과 함께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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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미국과 한국에서 부자들의 큰 기부 소식이 들립니다. 부를 형성하는데 기여를 한 보이지 않는 ‘소비자’ 와 시민들에게 환원한다는 측면도 있고 필요한 이들과 함께 나눈다는 뜻도 있습니다. 경제력이 곧 힘이요 힘 중에서도 가장 큰 위력을 가진 힘이라고 보면 자신의 재물을 나누는 행동은 자기의 힘을 빼는 일이기도 합니다. 용기와 덕을 갖추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코로나 백신 개발에도 부자들의 기여가 들어갔습니다. 물질의 기부 뿐 아니라 지식이나 재능, 시간을 나누는 데 아낌없이 참여하는 사람들 덕분에 세상이 돌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하늘에 보화를 쌓아두고 싶어서, 즉 “영생을 얻으려고” 부자가 해야 하는 일과 예수를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의 일이 다 이 땅에서도 여러 배로 받을 (30절) 일이고 또 영생을 얻는 일이라고 하십니다. 부자와 제자의 일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로 만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는 것은 이 세상에서도 값진 일이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재물과 가족을 “버려야” 영생을 취할 수 있다는 뜻은 재물과 가족을 사용하라, 사랑하라, 관리하라, 나누라…등등의 뜻도 담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십자가의 미스테리를 다시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하나를 버림으로 다른 하나를 건지는 계산이 아닙니다. 둘을 동시에 하는 것이기도 하고, 하나를 먼저 해야 다른 하나도 할 수 있게 되기도 합니다. 나는 부자가 아니니 내게 하시는 말씀은 아니네…생각하다가 그러면 가족은 어떻게 할 것인데 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모든 인연을 끊고 산 속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은 아니지만 오늘도 이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고 고민합니다 가게 (세상)가 산 속이라도 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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