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5장 11-32절: 죄, 회개 그리고 자의식

해설:

예수님은 세 번째로 좀 더 긴 이야기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앞의 두 비유가 ‘잃은 것을 찾는 사람’에게 집중했다면, 이번에는 ‘잃어버린 사람’에게도 관심을 둡니다. 이 비유는 두 파트로 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 파트는 둘째 아들의 가출과 귀환의 이야기이고(11-24절), 두 번째 파트는 큰 아들의 반응의 이야기입니다(25-32절). 

먼저, 둘째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유대 관습 상 아버지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유산을 요구하는 것은 “나는 이제 아버지가 필요 없습니다. 제 몫의 재산이나 주십시오”라는 뜻입니다. 아버지에게는 모욕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상하게도 두 아들에게 각각의 몫을 나누어 줍니다(12절). 둘째 아들은 며칠 후에 자기 몫을 돈으로 바꾸어 먼 지방으로 떠납니다. 얼마 후에 그는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돼지를 돌보는 일꾼으로 전락합니다(15절). 유대인으로서는 가장 비참한 신세가 된 것입니다. 그는 돼지나 먹는 쥐엄 열매로라도 배를 채우려 하는데 그것조차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가 바닥을 쳤을 때 “그는 제 정신이 들어서”(17절)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합니다.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 앞에 죄를 지었습니다”(18절)라는 말은 회개의 정석을 보여 줍니다. 모든 죄는 가장 먼저 하나님께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상처를 내는 일입니다. 또한 그 죄는 관계된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렇기에 회개는 먼저 하나님께 하고 또한 상처를 준 사람에게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는 죄로 인해 더 이상 자식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종이 될지라도 아버지 곁에서 살기를 선택한 것입니다(19절).

둘째 아들이 돌아 왔을 때 그가 아직 “먼 거리에 있는데,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서,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20절)습니다. 보통 유대인의 아버지라면 문을 걸어 잠그고 며칠이고 모른 체 했을 것입니다. 아니면 몽둥이를 들고 나가 쫓아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여기에 이 비유의 초점이 있습니다. 죄 가운데 잃어버린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며, 아무리 흉악하고 더러운 죄를 지었어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기뻐 반기신다는 뜻입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종의 하나로 써 달라고 청합니다(21절). 하지만 아버지는 종들에게 “가장 좋은 옷을 꺼내서, 그에게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겨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가 잡아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22-23절)고 말합니다.  아들로서 그리고 유산 상속자로서의 신분을 회복시킨 것입니다. 그리고는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24절)고 말합니다. 

그 때 큰아들은 밭에 나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집에서 잔치를 벌이는 소리가 들립니다. 종을 불러 자초지종을 알아 봅니다. 사정을 알고 난 큰아들은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지 않습니다(28절). 그 사실을 알고 아버지가 밖으로 나와 큰아들을 달랩니다. 그러자 그는 아버지에게 분통을 터뜨립니다(29절). 자신은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섬겼고 “아버지의 명령을 한 번도 어긴 일이 없는데”(29절) 이런 대접을 해 준 적이 없는데, 자기 몫의 유산을 탕진하고 온 동생에게는 이런 대접을 해 주는 것이 온당하냐고 따집니다(30절). 

그러자 아버지는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으니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다 네 것이다”(31절)라고 대답합니다. 아버지와 함께 살아가는 그 삶 자체가 복인데, 큰아들은 그것을 잊고 다른 복을 찾았습니다. 그리고는 “너의 이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즐기며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32절)라고 말합니다. 

묵상:

이 비유의 세 등장 인물은 각각 독특한 메시지를 전해 줍니다. 둘째 아들은 죄가 무엇이며 회개가 무엇인지를 보여 줍니다. 죄는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기 위해 하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자유요 행복인 줄 아는데, 실은 구속이요 불행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구나”라고 깨닫는 것이 “제 정신이 드는 것”(17절)입니다. 그런 자각을 따라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회개입니다. 죄에 대한 대가로 인해 죽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 죽겠다는 심정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에 때로 불행한 선택을 해도 그대로 내버려 두십니다. 우리 스스로 깨달아 바른 선택을 하기를 간절히 바라시면서 기다리십니다. 이 비유에서 아버지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둘째 아들이 깨닫고 돌아오기를 매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들이 먼 거리에 있음에도 알아 보았고 맨발로 뛰어 나가 맞아들였습니다. 진실하게 회개하고 돌아온 사람에게 하나님은 아무 것도 묻지 않으시고 아들로서의 자격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 비유에서 큰아들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자의식'(self-righteousness)으로 충만합니다. 하나님께 인정 받을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이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은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의 자의식은 그들만 못한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회개로 응답하고 예수님이 그들을 받아 들이자 불평하고 비판했습니다. 스스로 의롭다는 생각은 이토록 위험한 죄입니다. 

3 thoughts on “누가복음 15장 11-32절: 죄, 회개 그리고 자의식

  1. 많이 듣고 읽은 주님의 비유입니다, 지난날에 둘째 아들을 생각하며 주님의 은혜에 감사
    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수없는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사랑의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지금은 맏 아들의 행동을 하고 있지 않은지 성찰하고, 아픈 마음으로 무릎을 끓고 십자가에
    달리신 구세주를 바라봅니다. 이웃과 더불어 천국 잔치에 세상을 초대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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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이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더 생각하게 되어집니다. 큰 아들과 작은 아들 모두 하나님의 마음을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마음을 오해하고, 물리적으로 아버지를 떠났고,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였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큰 아들도 아버지와 곁에 있었지만, 사실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했고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작은 아들이 돌아왔을 때 함께 기뻐하지 못했습니다. 두 아들 모두 아버지의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입니다. 큰 아들, 작은 아들의 마음들이 내 삶에도 고스란히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제대로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오해한 마음들 회개하며 돌이킵니다. 하나님의 궁휼이 감싸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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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성경 속에는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누가 자기한테 일어난 사건을 말하면 듣는 이는 사건도 듣지만 말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알게 됩니다. 스토리텔링은 스토리와 스토리텔러 둘 다 전해집니다. 물론 사건이 중요하지 사건을 전하는 사람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이야기만큼 중요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이야기는 기억에 남고 이야기를 해 준 사람은 잊혀지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야기를 다 하고 나면 그 이야기는 이제 들은 사람의 것이 되고, 그 사람이 스토리텔러가 됩니다. 예수님은 스토리텔링을 아주 잘 하셨습니다. 듣는 이로 하여금 스토리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이 느끼도록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여러 번 반복해 들어도 늘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집을 나간 아들이 방탕하게 살다 집으로 겨우 돌아오는 장면 만 강조해도 드라마고, 못된 아들인데도 잊지 못하고 언제 올까 기다리는 아버지 만 강조해도 드라마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큰 아들의 질투까지 가미하면 삼각관계 못지 않은 드라마가 됩니다. 인생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걸까요. 구약에는 두 아들의 관계가 여러 곳에 나옵니다. 대치되는 상황과 상태를 보여주는 첫째와 둘째의 갈등은 우리 인간 드라마를 한마디로 설명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아버지와 작은 아들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언제부터인지 마지막에 잠깐 등장하는 큰 아들이 쿵! 한 대 때립니다. 집에 있는 사람의 여유, 결핍을 모르는 사람의 투정, 맏이의 욕심…큰 아들이 아니라도 쉽게 이런 모습이 되는 자신을 봅니다. 연민이 사라진 마음, 대신 질투가 들어앉은 마음을 주님 앞에 내어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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