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9장 18-27절: 십자가의 길

해설:

그로부터 얼마 후, 예수께서는 기도하기 위해 한적한 곳으로 가십니다(18절). 다른 복음서에 의하면 그곳은 빌립보의 가이사랴였습니다. 기도를 마치신 후에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18절)고 물으십니다. 제자들은 사람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했고(19절), 예수님은 다 듣고 나서 다시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20절) 그러자 베드로가 “하나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답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보내신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시면서(21절) 당신이 “반드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이며 사흗날에 살아날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22절). 

그런 다음, “나를 따라오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23절)고 말씀하십니다. 메시아는 고난의 종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짊어지셔야 했기에 그분의 제자는 마땅히 스승의 고난에 동참해야 합니다. 그것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입니다. 그것은 매일의 일상 속에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24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목숨을 버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목숨을 가장 가치있게 사용하는 길이며, 참된 생명에 이르는 길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잃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를 잃거나 빼앗기면,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25절)고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실은 자기 자신을 참되게 얻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인자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26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이 세상에서 소수자가 되는 것이고 때로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며 때로 고난을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십자가의 길을 걸으려면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고난을 견디며 끝까지 믿음을 지킨 사람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큰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를 볼 사람들도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덧붙이십니다(27절).

묵상:

예수님의 권위 있는 말씀과 놀라운 이적들은 사람들에게 궁금증을 안겨 주었습니다. 그분을 만났던 사람들은 나름대로 그분을 어떤 특별한 인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분을 메시아로 믿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생각이 어떤지 물어 보셨고, 베드로는 그분이 “하나님의 그리스도” 즉 메시아로 오신 분이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사람들이 메시아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그분이 생각하는 것이 너무도 달랐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면 로마 제국을 제압하고 다윗의 영광을 회복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메시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서 메시아는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죽기까지 복종하면 하나님은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시키실 것입니다.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낮아지는 방법을 택하셨습니다. 칼로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칼에 죽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사랑이 아니고는 세상은 변화될 수 없기 때문이며, 사랑은 자신을 끝까지 내어 주는 것이 아니고는 제대로 표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메시아를 승리자가 아니라 패배자로, 군림하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로, 전사가 아니라 종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 길을 완주하셨고, 그로 인해 우리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우리 자신을 부인하고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길을 따라 걸어야 합니다. 그것은 자기를 잃어 버리는 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참되게 얻는 길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소수자가 되고 잊히는 일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길입니다.    

4 thoughts on “누가복음 9장 18-27절: 십자가의 길

  1. 세상을 버리고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지고 주님뒤를 따르기 원합니다.주님께서 당 하신
    배반, 누명, 수모, 고초와 세상죄를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과 승천의 영광에 동참하는
    믿음과 의지와 결단이 필요합니다. 아무것도 자랑할것이 없지만 이웃과함께 영생으로 인도하는
    십자가를 세상에 자랑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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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병이어를 행하시며 자연을 다스리는 기적을 보고야 하나님의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베드로보다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므로 인류를 구원하시는 주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믿음을 구합니다.
    매일의 생활속에 내 자신의 욕망과 자부심에서 해방되어 자유함을 얻고 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길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도 기도합니다.
    제한 된 이생의 목슴에 연연하지 말고 이세상이 줄수없는 영원한 평화와 질서를 꿈꾸며 내일을 준비하는 지혜를 간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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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세상의 기준과 하나님 나라의 기준은 정말 많이 다릅니다. 세상에서는 자신을 믿고, 자신을 위한 삶을 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나라는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주기도문의 고백처럼, 내 삶이 하나님 나라의 기준을 가지고 삶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줄을 기대하고 기도합니다. 나를 위한 삶과 고통을 멀리하는 삶이 아닌, 나의 고통과 십자가를 가지고 Embrace 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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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수난절로 접어 들었습니다. 작년 수난절을 지나는 중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불러온 공포와 불안이 얼마나 컸는지 기억이 또렷합니다. 작년 수난절이 터널의 입구였다면 올해는 부활절을 맞을 때 터널의 끝도 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백신이 만들어졌으니 이제 활발하게 공급되어 부자 나라 뿐 아니라 가난한 나라 국민도 백신을 맞을 수 있게 되고, 자꾸 변종을 만들어내는 바이러스의 연구도 잘 진행되고 발전해서 적절한 예방과 치료법이 나오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자기 생명의 보존을 팬데믹의 시대에 맞춰 생각해 봅니다. 자기 생명을 건지려는 노력은 헛되다고 하시니 전쟁이나 질병, 재해가 일어나면 우리는 손 놓고 있어야 하나…생명이라는 말은 숨이 붙어 있어 생존한다는 뜻보다 “정체성”이나 “자아” 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십자가도 당신이 받게 될 십자가 형벌을 예고하신 것 외에 그 십자가가 뒤에 보여줄 순종과 희생의 가치의 상징으로 우리도 “매일” 예수님의 길을 따라 걸으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살고 죽는 일이 생리활동의 지속과 중단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진실로 사는 것, 사람 답게 사는 길이 어디에 있느냐를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책으로도 유명하고, 몇 년 전에 영화로 만들어져 화제가 되었던 엔도 슈사쿠의 “침묵 Silence”이 생각납니다. 예수를 부인하면 살려주고, 부인하지 않으면 모진 고문을 받다 죽게 되는 상황 속에서 주인공 신부는 자기도 고문을 받지만 같이 끌려온 신도들의 목숨이 자기의 결심에 달려 있다는 더 무서운 고문을 받게 됩니다. 남의 목숨을 살리는 일이라면 배교의 오욕과 변절자의 운명을 받아 들이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내 얼굴을 밟고 지나가라”는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합니다…살아 남은 그는 이제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상태로, 배교자로서 나라가 하라는대로 다 하면서 교회의 비난과 역사에 오점으로 남을 인생을 살다가 숨을 거둡니다. 화장될 때 그는 십자가를 쥐고 있었습니다. 십자가의 삶이 어떤 삶인지는 개인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이 소설의 주인공 신부의 삶처럼 우리가 생각하는 길과 정반대일 수 있습니다. 메시지 성경번역은 self-sacrifice 가 주님의 길이라고 말합니다. 스스로 작아지는 길, 낮아지고 없어지는 길을 걸을 때 비로소 자기를 얻는다는 뜻을 깨우치며 사순절을 보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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