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7장 1-17절: 마음이 피를 흘리듯

해설:

예수께서 사역 거점이었던 가버나움에 계실 때 그곳에 주둔해 있던 로마군의 대장의 종이 병으로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 백부장은 그 종을 소중히 여겼다고 합니다(2절). 그는 주둔군의 수장으로서 얼마든지 자신의 욕망대로 살 수 있었지만 가버나움 주민들에게 인정과 존경을 받을 정도로 누구에게나 친절을 베풀었습니다(4-5절). 그런 사람이었기에 당시에 단순한 소유물로 여겨졌던 종에 대해 지극한 관심을 베푼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들에게, 예수께 청하여 자기 종을 낫게 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 청을 듣고 예수님은 그의 집으로 향합니다. 예수께서 자기 집으로 오신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백부장은 급히 사람을 보내어 그러지 마시라고, 그냥 말씀만으로 고쳐 달라고 청합니다(6-8절). 식민지 주둔군 대장이 무명의 전도자에게 이렇게 깍듯한 예우로 대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말을 전해 들으시고 놀라시며 “나는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서는, 아직 이런 믿음을 본 일이 없다”(9절)고 칭찬하십니다. 그 시각으로 그 종은 치유 받았습니다(10절). 

얼마 후에 예수님은 나인이라는 동네로 가십니다(11절). 나인은 갈릴리 호수 남쪽에 있던 마을입니다. 성문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성안에서 나오는 장례 행렬을 만납니다. 혼자 된 어느 여인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 죽어서 장례를 지내는 중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슬퍼하며 그 행렬을 따라가고 있었습니다(12절). 예수님은 그 여인을 “가엽게 여기셔서”(13절) 행렬을 멈춰 세우십니다. 그리고는 관에 손을 대십니다(14절). 율법에 의하면 그것은 자신을 부정하게 하는 행동입니다만, 예수님은 개의치 않으십니다. 말씀만으로도 충분했지만 그분의 사랑이 그렇게 행동하게 한 것입니다. 그분은 죽은 사람에게 일어나라고 명하셨고 그 말씀대로 죽은 사람이 일어납니다(15절).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놀랐고 또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16-17절).

묵상:

로마 백부장은 식민지 주둔군의 대장으로서 적어도 자신의 관할 구역 안에서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대개 주둔군 대장들은 주어진 임기 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사용하여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고 부를 쌓습니다. 하지만 이 백부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주민들을 위해 섬기는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그에게는 다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 제국의 식민이 되어 무력하게 수탈 당하는 주민들에 대해 그는 긍휼한 마음으로 대했습니다. 그런 사람이었기에 자신이 데리고 있던 종의 아픔에 대해서도 모른 체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사정을 살피는 사람이었기에 예수님이 자신의 집으로 오신다는 말을 듣고 만류한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에게서 칭찬과 호의를 입기에 충분한 사람이었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긍휼하심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이 장례 행렬을 만났을 때 그 누구도 그분에게 죽은 아들을 살려 달라고 청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무너진 듯 슬퍼하는 여인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장례 행렬을 멈추 세우십니다. 그분은 백부장의 종의 경우처럼 말씀만으로 그 청년을 일으킬 수 있었지만, 굳이 관에 손을 대십니다. 정결법에 의하면, 시신에 닿으면 온 몸이 부정해집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괘념치 않으십니다. 그분의 긍휼하심이 그렇게 행동하게 만들었습니다. 

‘긍휼’에 사용된 한자 ‘휼’은 마음 ‘심’과 피 ‘혈’을 합하여 만든 글자입니다. 다른 사람의 사정을 보고 마음이 피를 흘리듯 아파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 때문에 그분은 당신의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 마음으로 우리가 구원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른 사람에 대할 때 긍휼함으로 대해야 합니다. 

4 thoughts on “누가복음 7장 1-17절: 마음이 피를 흘리듯

  1. 식민지의 지역 통치자인 백부장의 믿음을 통해 전파되는 예수님 , 과부를 긍휼이 여기시어 그 아들의 생명을 연장싴주시는 주님의 긍휼을 상기하며 내 안에도 그런 긍휼이 물결치기를 구하는 아침입니다.
    주님의 자비와 긍휼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임하고 또 주님의 자비와 긍휼이 나와 내 주변의 모든사람들에게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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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먼저는 백부장과 나인성에 있는 과부와 같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더 충만해지길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 안에 갇혀진 박스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무소부재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내 믿음의 눈으로 감히 바라보고 순종하며 반응하기를 원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궁휼이 내 삶과 가족과 교회, 그리고 사회가운데 부워지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궁휼없이는 우리가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기억합니다. 또한 동일한 궁휼한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서 오늘 하루 살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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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전혀 가망이 없고 자격이 없는 죄인에게 주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으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주님의 긍휼을 갖고 세상을 보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영혼 구원 사역에 이웃과
    함께 동참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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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가버나움의 백부장의 이야기와 나인의 과부 이야기는 서로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습니다. 백부장의 종은 위중한 상태지만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백부장한테 이 종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종을 위해 여러 사람이 나서서 말해줍니다. 백부장은 적극적으로 예수님의 도움을 청합니다. “비대면”으로 고쳐 주십니다. 과부의 경우엔 아들이 이미 죽었습니다. 과부에겐 그 아들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과부는 울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를 불쌍하게 여기신 예수님이 손을 대어 고쳐 주십니다. 누가는 이 두 이야기를 연이어 기록합니다. 끊어서 읽지 않고 같이 읽으라는 뜻 같습니다. 백부장의 경우 예수님은 그를 만나기도 전에 좋은 평가부터 듣습니다. “부탁을 들어줘도 될 만한 (4절) 사람”이라고까지 말합니다. 만나보니 백부장은 주위의 소문대로 바른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인격이 종의 목숨을 살리는 데 기여를 합니다. 나인 성에 사는 과부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지만 아들 하나 만 의지해 살았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죽어서 관에 들어간 사람까지도 일으켜 세우신 이 기적은 다른 스토리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덜 인용되는 귀절입니다. 누가는 이 사건이 온 유대와 근방에 두루 퍼져나갔다고 전합니다. 과부에게 “울지 마라” 한 마디 건네시는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 합니다. 예수님이 고쳐 주실 때는 죄가 용서 받았다, 일어나라, 네가 믿느냐, 네가 원하느냐…등등 말씀하십니다. “울지 마라” 이 말씀은 과부한테만 하시는 말씀이 아닌 것 같아 더욱 마음이 짠합니다. 아들이 죽어 세상이 다 끝난 것 같은 절망감 속에 있는 과부에게 새 날을 주십니다.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요한계시록의 예수님을 봅니다. 우리의 모든 형편과 상황을 아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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