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6장 17-36절: 하나님 닮기

해설: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와 평지에 서시니 여러 지역에서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그분에게서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고 싶어서 모여 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가르침도 주셨고 온갖 질병도 고쳐 주셨습니다(17-19절). 

그 즈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몇 가지 말씀을 주십니다. 먼저 “복 있는 사람”과 “화 있는 사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20-26절). 여기서 주목할 단어는 “지금”입니다(21절, 25절). “지금” 가난하고 굶주리고 슬피 우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지금” 부요하고 배부르고 웃는 사람은 불행하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통해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희년의 사건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희년이 오면 땅 부자들은 그동안 사들인 땅을 모두 내어 놓아야 합니다. 반면 그동안 땅을 잃은 사람들은 다시 돌려 받습니다. 그것처럼 지금 가난하고 굶주리고 슬피 우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보고 기뻐할 것이며, 지금 부유하고 배부르고 웃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로 인해 슬퍼하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복은 지금 무엇을 얼마나 가지고 누리고 있느냐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호의를 입고 있는 것이 진정한 복이요, 그 호의에서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화입니다. 

하나님에게서 호의를 입은 사람들은 그 호의로 다른 사람들을 대해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시며 모든 것을 바로 잡으실 것을 믿습니다. 따라서 그분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악하게 구는 사람들(“원수”, “미워하는 사람”, “저주하는 사람”, “모욕하는 사람”, “뺨을 치는 사람”, “겉옷을 빼앗는 사람”, “달라는 사람”, “네 것을 가져가는 사람”)까지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27-30절). 그것은 인간적인 감정으로는 행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의 인성으로 할 수 있는 사랑은 나에게 좋게 행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행하는 일입니다(31-34절). 하나님의 다스림을 믿고 의지하는 우리는 거기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에게도 인자”하십니다(35절).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자비로워야 합니다(36절).

묵상: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호의를 입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 호의를 입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 호의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은혜라고 부릅니다. 사람은 누구나 복을 원하고 복을 구하지만, 복 중에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의 호의를 입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삽은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것이 나에게 복이니, 내가 주 하나님을 나의 피난처로 삼고, 주님께서 이루신 모든 일들을 전파하렵니다”(시 73:28)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 품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 품 안에서 우리는 비로소 영적 허기를 채우고 기쁨을 누립니다. 

하나님의 호의를 입고 혼자 즐기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받은 호의를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상대방의 자격을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호의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닮아 우리도 상대방의 자격을 묻지 말고 사랑을 베풀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인성을 따라 행하자면 우리를 선하게 대하는 사람에게만 선하게 행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성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호의를 따라 삽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희년의 사건이 진정 우리 안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4 thoughts on “누가복음 6장 17-36절: 하나님 닮기

  1. 오늘 주시는 말씀 원수를 사랑하고, 뺨을 치는 사람에게 다른 쪽 뺨을 돌리라고 하시는 말씀 즉 우리 인간들에게 불가능한 일을 하라는 주님의 말씀 속에 나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를 가늠해 봅니다, 내 안에있는 인성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주님안에 있는 신성을 통하여만이 가능함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십자가만이 이런 일들을 할수있음을 믿고 십자가를 통한 회년의 회복을 위해 기도합니다.
    오늘 하루는 내 이웃을 향하는 내 마음에 예수님의 십자가가 그껴지기를 기도합니다.

    Like

  2. 의롭다고 칭함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의 호의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재정이 풍족할때,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구제는, 호의를 받지 아니한 사람들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재정이 넉넉하지 않을때, 가난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섬기는 것은 어려운일 입니다. 나의 삶이 풍족해진 후에 남을 섬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이미 호의를 받은 우리는 삶이 풍족해진 후에 섬기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상관없이 우리는 이미 호의를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섬길 수 있습니다. 내 삶에, 오늘도 하나님의 호의를 배푸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Like

  3. 확고 부동한 믿음을 원합니다, 삶으로 실천하는 살아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영의 마음이 열려 가난하고 굶주리고 병들어 있는 자들을 마음으로 보기를 원합니다.
    세상이 신자라고 배척하고 욕하고 악하다고 내칠때 주님께 감사하다고 고백하는 결단을 원
    합니다.십자가의 은혜를 이미 받고, 온 천지 만물의 주인이신 자녀로서 상속을 받았으니
    50년 만에 한번씩오는 희년이 아니라 매일 말씀에 순종하며 이웃과 함께 주위 사람들에게
    희년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Like

  4. 레위기 25장은 희년의 명령을 담고 있습니다. 땅은 원래 나의 것이므로 (레 25:23) 땅을 영영 소유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희년의 규례는 종에게도 적용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내 종이기 때문에 (레 25:55) 종 또한 영영 소유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율법을 지킨다” “말씀 대로 살기를 원한다” “성경을 따라 산다” 등등 늘 하는 말 속에 레위기의 희년 관련 말씀이나, 신명기에 있는 이방민족의 정복 명령 등은 예외적인 말씀으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단어의 일차적인 뜻 외에 문화와 역사가 녹아 들어가 그 말의 의미를 확장시킨 경우가 허다합니다. 연합감리교단의 운명을 놓고 오랜 시간동안 많은 토론과 싸움이 있었습니다. “동성애”라는 단어는 성소수자라는 더 넓은 범주의 단어로 확장되었습니다. 앞을 못 보거나 못 걷는 상태를 말하던 “장애”의 뜻도 훨씬 더 넓고 큰 상황을 담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개인과 사회가 씨름한 결과로 얻어진 의식과 법의 변화입니다. 희년의 법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고민은 추적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상적인” 사회를 보여 주시는 율법이라는 정도로 설명하고 뚜껑을 닫아놓은 느낌입니다. 코로나를 앓고 있는 지금이 희년의 때인가 계속 생각하게 됩니다. 정해진 연수에 맞춰 희년을 제도화할 수 있는 사회는 (아직) 없다 할지라도 믿는 사람은 희년의 정신을 깊이 고민해야 하지 않나 묻게 됩니다. 오늘 묵상은 아버지가 자비로우신 것처럼 자비로워져라 (36절) Our Father is kind; you be kind의 명령으로 돌아옵니다. 타인을 향한 열림과 너그러움이 희년이라는 신세계를 연다는 말씀으로 받습니다.

    Like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

%d bloggers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