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5장 12-39절: 새것이 왔다!

해설:

어느 동네에 계실 때 나병(혹은 악성 난치 피부병) 환자가 그분을 찾아 옵니다(12절). 당시 이런 환자들은 동네로부터 떨어져 따로 살았습니다. 그들이 제한 구역을 떠나 동네로 들어오면 몰매 맞아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 사람은 목숨을 건 모험을 한 셈입니다. 그는 “주님, 하고자 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12절)라는 말로 자신의 믿음을 보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굳이 손을 대지 않아도 말씀 만으로 치료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과 접촉하면 율법에 따라 온 몸이 부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괘념치 않으시고 그에게 손을 대십니다. 그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즉시로 깨끗하게 되었습니다(13절). 예수께서는 그에게, 제사장에게 가서 몸을 보이고 율법에 따라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14절). 제사장에게 완치 판정을 받아야만 가족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예수님에 관한 소문은 더욱 퍼져 나갔고 많은 병자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외딴 데로 물러가서 기도하셨”(16절)습니다. 

또 다른 날에 있었던 일입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에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교사들이 찾아와 말씀을 듣고 있었고, 예수님은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17절). 그 때 어떤 사람들이 중풍병자 한 사람을 침상 째 들고 왔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예수께 접근할 수 없자 지붕을 뚫고 예수님 앞으로 그 병자를 달아 내립니다(19절).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 사람아, 네 죄가 용서받았다”(20절)고 말씀하십니다. 그의 질병의 뿌리가 그의 죄에 있음을 꿰뚫어 보신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충격을 받고 분개합니다(21절). 그들 생각에, 죄를 용서하는 권한은 하나님께만 있으므로 예수님은 지금 스스로 하나님으로 자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속마음을 아시고 예수님은, “네 죄가 용서 받았다”라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서 걸어가거라”(23절)라고 말하는 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쉬우냐고 물으십니다.  그 질문에 아무 답이 없자 예수님은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24절)고 덧붙이시고는 중풍병 환자에게 일어나 침상을 가지고 가라고 말씀하십니다(24절). 그러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는 너무도 기뻐서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침상을 들고 나갑니다. 그 광경에 모든 사람들이 놀라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얼마 뒤에 예수께서 세관을 지나시는데 그곳에 레위라는 사람이 앉아서 일을 보고 있었습니다(27절). 예수님은 그에게 다가가 “나를 따라 오너라”고 부르셨고,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 두고 따라 나섭니다. 레위는 기뻐서 예수님을 집으로 초청하여 큰 잔치를 벌입니다(29절). 세리들과 다른 친구들이 그 잔치에 함께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당신들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어울려서 먹고 마시는 거요?”(30절)라고 따져 묻습니다. 당시에 식탁을 함께 한다는 말은 그 사람과 같은 부류의 사람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들으시고 예수님은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러 왔다“(31-32절)고 답하십니다. 그 때 또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금식에 대해 여쭙니다(33절).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금식으로 유명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한 주간에 이틀 금식하는 것을 이상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보기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금식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왜 금식하지 않고 먹고 마시기를 즐기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혼인잔치를 비유로 삼아 답하십니다(34절). 지금은 혼인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중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신랑을 빼앗길 날”(35절)이 올 터인데, 그 때에는 금식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두 가지 비유를 더 말씀하십니다. 헌 옷을 수선하기 위해 새 옷감을 잘라 붙이는 사람도 없고, 새 포도주를 헌 포도주 부대에 담는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36-38절). 당신을 통해 새로운 역사가 펼쳐지고 있는데, 그것을 과거의 사고 방식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마치 묵은 포도주 맛에 인이 박혀서 새 포도주를 입에도 대지 않으려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39절).

묵상:

희년의 사건 즉 모든 왜곡된 것들이 원래의 상태로 회복되는 사건이 계속 이어집니다. 나병 환자는 질병의 고통에 더하여 사회적으로 소외 당하는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데려 온 중풍병자는 육신적인 질병에 더하여 영적 질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레위는 세리로서 세도를 부리며 살고 있었지만 로마의 권력을 등에 업고 동족의 피를 빨아 먹는 매국노로 미움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회적 질병을 앓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에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멀리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들과 접촉하는 것은 스스로를 부정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며, 혐오와 저주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태도는 달랐습니다. 그분은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서 회개시키러 왔다”(31-32절)고 말씀하시면서 육신적으로, 영적으로, 사회적으로 병든 사람들을 찾으셨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부정하다고, 죄인이라고 지목 당하고 외면 당하던 사람들을 찾아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사람을 평가하고 규정하고 판단하고 가르던 율법의 시대가 가고 품고 사랑하고 회복시키는 은혜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그것이 예수님을 통해 시작되고 있는 희년의 사건이었습니다. 과거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4 thoughts on “누가복음 5장 12-39절: 새것이 왔다!

  1. 속 마음이 나병보다 더 더럽고 악취가나는 질병을 보혈로 깨끗하다고 일러주시는 사랑의
    주님을 끝까지 붙잡고 살기를 원합니다. 어렵고 힘들지만 중풍에 고생하는 친구를 주님께
    인도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신랑 예수님을 모시고 결혼잔치를 하는 가정과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세상으로 부터 미움받고 천대를 받더라도 구원의 하나님을 담대히 이웃과함께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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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구습에 물들어 새로운 시대를 못 받아들이는 바리세파 사람들이나 율법학자들에게 예스님의 시대를 보여주고 설명해 주지만 마믕이 완악한 그들이 못 받아들이는 것과 같이 내 안에 꽈리를 틀고 버티고 있는 구습들을 상고해 보며 나는 얼마나 유연성을 갖고있나 생각해 봅니다..
    흔이 말하는 새 포도주는 새 푸대에라는 말씀을 통해 굳어져 있는 내 자신을 돌아봅니다.
    이제 희년을 맞아 모든 것들을 본래의 자리에서 다시 생각하며 믿음을 점검하면서 변화되어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주님 앞에 예 내가 죄인입니다 고백하고 회개하고 따르는 제자의 삶이 오늘의 나의 삶으로 이어지기를 구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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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자기 중심성 오류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신념, 믿음, 세계관 즉, 자신의 프레임에 갇혀서, 모든 세상을 바라보는 오류입니다. 자기 중심성 오류는 더 나아가서 상대방과 의사소통이 잘안되고, 상대방의 무능력 혹은 불평으로 바뀌게 되어집니다. 자신은 완벽하게 정리하고, 의사를 객관적으로 전달했다고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입장에서만 자명한것 뿐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희년의 사건 이후에 많은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놀라운 사건에,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자기 중심성 오류를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합니다. 그리하여 율법의 시대가 아닌 새로운 프레임의 시대, 은혜의 시대를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아파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현저하게 더 많아진 이때에, 예수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새로운 시대, 희년의 사건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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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지금이 희년의 기간일까요. 코로나가 가라앉고 나면 새 기준과 새 질서가 세워질까요. 오늘 본문에서 보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격리된 삶, 사람들 뿐 아니라 하나님과도 distancing – 거리두기를 하며 산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고치신 예수님은 오늘 이 세상에서는 누구에게 찾아오실까요. 온 몸에 문둥병을 앓던 사람은 예수님께 “주님이 원하시면 (If you want to)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대담한 요청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주님 당신이 나의 회복을 바라신다면 고쳐 주실 수 있다고 믿는다는 뜻입니다. 자기 소원에 예수님의 소원까지 얹었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확신하는 마음도 담았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원한다”고 답해주십니다. 이 짤막한 대화가 세상 곳곳에서, 교회마다 가정마다 일어나고 있다고 믿습니다. 코로나 “덕분에” 우리 모두가 죄인이요 병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가 오기 전에는 뭐든지 더! 더! 원했었는데 다같이 급정거를 하면서 몸도 마음도 크게 출렁이고 나니 이제는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저 앞으로만 달려가면 된다던 의식이 어디로 달려가는 지를 묻게 되었고, 왜 달리는지, 누구와 달리는지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이것을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나는 의인을 부르려고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고 왔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제야 들립니다. 어제 베드로는 자기가 죄인이라며 주님께 떠나시라고 청했습니다. 주님은 죄인으로부터 떨어지기를 원하시지 않습니다. 회개하고 고쳐지기를 원하십니다. 코로나 이후 고쳐진 세상을 꿈꾸며 기도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면 깨끗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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