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4장 1-13절: 오직 하나님!

해설:

세례 받으신 후에 예수님은 광야로 가셔서 사십 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십니다. 그것은 그분에게 임하신 성령께서 인도하신 일입니다(1절). 사십 일이 거의 끝나갈 즈음에 사탄이 예수님을 시험합니다. 영적 생활의 아이러니는 영적으로 충만하고 깨어 있을 때 사탄의 유혹과 시험이 더 심해진다는 것입니다. 사십 일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을 것입니다만, 예수님은 사탄에게 시험 받은 이야기만 제자들에게 전해 주셨습니다. 

사탄은 두 번이나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3절, 9절)이라고 말을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실은 의심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라는 것이 유혹의 핵심이었습니다. “돌더러 빵이 되라고 말해 보라”(3절)는 것도,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 것(9절)도 자신의 신분을 입증하라는 유혹이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주어진 능력을 하나님의 뜻과 상관 없는 일을 위해 사용하라는 유혹입니다. 또한 악마는 자신에게 절하면 세상의 모든 권세를 주겠다고 유혹합니다(7절). 

이 유혹은 인간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원죄의 핵심인 이기심을 자극한 것입니다. 세 번의 유혹을 거부하면서 예수님은 당신에게 주어진 능력을 오직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만 사용하겠다는 의지를 굳히셨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준다 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거부하겠다는 결의를 다진 것입니다. 이 결의가 예수님으로 하여금 골고다까지 흔들림 없이 걸어가게 해 준 힘이었습니다. 십자가로 향하는 길은 요단 강에서 시작되었고 유다 광야에서 분명 해졌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셨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4절, 8절, 12절). 예수께서 두 번씩이나 성경 말씀을 인용해 거부하자, 세 번째 시험에서는 악마도 성경 말씀을 인용합니다(10-11절). 하지만 사탄은 말씀의 본뜻과 다르게 적용하고 있고, 예수님은 말씀의 본뜻을 따라 적용하십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을 읽기만 하고 깊이 묵상하지 않으면 악마처럼 자기 좋을대로 왜곡합니다. 예수님처럼 말씀의 본뜻을 깊이 들여다 보고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말씀 묵상의 이유이며 목표입니다.

예수님을 유혹하는 일에 실패한 악마는 잠시 동안 물러 납니다(13절). 잠시 퇴각했던 악마는 예루살렘에서 가룟 유다를 통해 다시 다가 옵니다(22:3).

묵상: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요 “참 인간”이셨습니다. 히브리서 저자가 “우리의 대제사장[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십니다”(히 4:15)라고 증언했듯,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인성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악마의 유혹은 예수님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탄은 인간이 공유하고 있는 세 가지 욕망(식욕, 권력욕, 명예욕)을 공략하여 예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로서 주어진 능력을 오용하도록 유혹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욕망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신의 욕망을 내려 놓기를 결단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반대의 유혹을 자주 받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보다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실은 내 욕망을 섬기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고 은사를 맡기신 이유는 그분의 뜻을 이루게 하려는 것인데, 우리는 그것으로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키려 합니다. 그 목적을 이루는 일이라면 사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오용하기를 부끄러워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스스로를 속이고 다른 사람을 속인 채, 믿는 사람 개인은 현세 축복을 위해, 교회는 외적 성장을 위해 질주해 온 결과, 교회는 세상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했습니다. 그 옛날 예언자를 통해 하신 말씀(“너희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모독을 받는다”)이 오늘 우리에게 이루어졌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께 부끄럽고 죄스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습니다. 

4 thoughts on “누가복음 4장 1-13절: 오직 하나님!

  1.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하나님의 지혜로 이겨내시는 주님을 경배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근본적인 욕망을 어떯게 이겨낼야 할지 곰곰히 생각해 보며 끝내는 성령의 도움만이 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내 안에 있는 오성을 직시하며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성령의 도움을 구합니다, 내 능력과 지혜가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와 자비를 구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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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매일 아침 기도와 말씀 묵상으로 무장하여 끊임없이 공격해오는 달콤한 시험과 유혹을
    이기는 믿음을 원합니다. 마지막 숨이 끊어질때 까지 세상 부귀영화에 넘어지지 않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함께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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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나의 욕망과 나의 안위를 위한 삶이 부끄럽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써, 자신의 자아를 만족시키는 삶만 살려고 하는 모습을 회개합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 말씀을 떠올립니다. “이제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고, (자아) 내가 사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 하나님의 목적과 방향, 그리고 나의 안위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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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오늘 아침에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의 물음이 전혀 낯설지 않다고 느껴집니다. 혼자 있을 때나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나 나를 나로 인식하는 처음 질문은 너는 하나님의 자녀인가 입니다. 나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데 답해야 하는 첫번째 보안 질문 같은 것입니다. 이 질문에 우물쭈물하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 사탄이 말을 걸 때는 이 질문의 뉘앙스가 조금 달랐던 것 같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라고 동의하면서, “판을 깔아 주면서,” 자기 할 말을 합니다. 메시지 성경 번역으로 보면 더욱 분명합니다. “Since you’re God’s Son,” 이라고 처음 입을 떼고, 세번째 유혹 때에야 “If you are God’s Son” 이라고 합니다. 확신하던 마음일지라도 시험을 지나면서는 지치고 흔들리게 되어 있다는 계산을 했는지 모릅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시험이 우리가 받는 유혹과 여러 면에서 같다는 것이 위로가 됩니다. 두려움과 외로움이 번갈아 몰려오는 나의 광야도 예수님이 지내신 40일 간의 광야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게 곧 힘이 됩니다. 팬데믹이 전세계를 옭아매고 있는 중에도 나의 눈은 광야에서 뚜벅뚜벅 걸어 나오신 예수님을 봅니다. 당장의 배고픔을 면하려고 “수”를 쓰지 않는 기품, 자기 것이 아닌데도 다 주겠다고 꼬드기는 사기에 넘어가지 않는 냉철함, 거룩한 생명의 선물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신중함을 배웁니다. 군자의 당당한 걸음으로 광야에서 돌아 오시는 예수님을 나도 따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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