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서 1장 1-25절: 조용하고 작은 시작

해설:

누가는 바울의 선교 활동을 도왔던 사람입니다(골 4:14; 딤후 4:11; 몬 1:24). 그는 의사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역사적 사실에 대한 관심이 컸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쓰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사도행전까지 썼습니다. 만일 사도행전이 없었다면 우리는 예수 운동이 어떻게 세계로 퍼져나가게 되었는지를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누가는 “우리 가운데서 일어난 일들”(1절)에 대해 씁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하신 일을 가리킵니다. 누가가 이 글을 쓰기 전에도 같은 시도를 한 사람이 “많이”(1절) 있었습니다. 하지만 누가는 이 일들의 “모든 것을 시초부터 정확하게 조사하여 보았으므로”(3절) 다시 쓰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데오빌로”(3절)는 누가의 이 프로젝트를 재정적으로 후원했던 독지가였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는 이 일들에 대해 이미 배워 알고 있지만(4절) 누가는 그 모든 것이 “확실한 사실임을” 알게 되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이 글을 씁니다.  

누가는 사가랴와 엘리사벳 부부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사가라는 제사장이었고 그 아내도 역시 제사장 가문의 딸이었습니다(5절). 두 사람은 경건하고 의로운 사람들로서 율법을 “흠 잡을 데 없이 잘 지켰”(6절)는데, 불행하게도 늙도록 자녀가 없었습니다(7절). 

당시 제사장들은 24조로 나누어 일 년에 두 주간씩 성전 제사일을 섬겨야 했습니다. 사가랴가 속한 조가 성전 일을 섬길 때의 일입니다. 제사장들이 가장 영예롭게 생각하는 일은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는 일(9절)이었는데, 사가랴에게 그 일이 떨어집니다. 사가랴가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는 동안에 백성들은 바깥에서 기도하고 있었는데, 성소에서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납니다(11절). 천사는 그에게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라 하십니다(13절). 그 아들은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할 것이고,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을 그들의 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할 것”(16절)이라고 말쌈하십니다. 또한 그 아들은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주님보다 앞서 와서”(17절)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된 백성을 마련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주님”은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이 말을 듣고 사가랴는, 부부가 모두 늙었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18절). 임신하는 일은 생리적으로 불가능했고 노인이 된 지금은 더욱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천사는 자신의 이름이 가브리엘이라고 알려 주면서 자신이 말한 것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말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19-20절). 바깥에 있던 사람들은 분향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모두들 이상하게 여깁니다. 성소는 하나님의 임재가 약속된 곳이므로 심상치 않은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분향하고 나온 사가랴가 말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성소에서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했을 것입니다. 

일 주일 동안의 봉사를 마치고 자기 집으로 돌아간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얼마 뒤에 임신이 된 것을 알게 되었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삽니다(24절). 노인의 몸으로 임신한 것이 흉으로 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하신 신비한 일을 보호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엘리사벳은 평생토록 구하던 일이 이루어진 것으로 인해 감사 드립니다(25절).

묵상:

5백 년 전, 하나님은 말라기를 통해 주님의 날이 임하기 전에 엘리야가 와서 주님의 길을 준비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말 4:5-6절). 이 예언이 선포된 후에 유대인들은 엘리야가 다시 올 날을 학수고대 했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메시아가 오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예언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땅에 살 때 4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침묵하신 것처럼, 말라기 예언자가 사라진 이후로 하나님은 무겁게 침묵하셨습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예언조차도 그쳤습니다. 하나님은 안 계신 것 같았고, 계신다 해도 인류의 역사에서 손을 떼신 것 같았습니다. 

그토록 긴 침묵의 시간을 지난 후,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이름 없는 노인 부부에게 오셔서 그 일을 시작하십니다. 천사 가브리엘은 사가랴에게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알리면서 말라기 예언자의 말씀을 언급하십니다. 그가 낳을 아들은 다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의 일을 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아, 하나님은 침묵하신 것도 아니고 손을 떼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그분의 때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때가 이르자 그분은 이렇게 조용히, 이렇게 작게, 일을 시작하십니다. 이 작은 일이 인류의 역사를 뒤집어 엎는 일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또한 2천 년 전에 일어난 그 사건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오늘 우리에게 이어질 줄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상상하며 놀랄 뿐입니다. 할렐루야! 

4 thoughts on “누가복음서 1장 1-25절: 조용하고 작은 시작

  1. 태초부터 사랑하시고 복 주시려고 우주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그 귀한 사랑을 등지고 세상죄속에 빠진 인류를 긍휼이 여기사 독생자 예수그리스도
    까지 희생하시는 놀라운 은혜를 생각과 영혼에 깊이 각인 하기를 원합니다.
    이웃과 함께 사랑의 주님을 세상에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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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지만 침묵속에서도 끊임없이 우리를 챙겨주시며 준비시켜 주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엘리아의 심령과 능력인 요한을 통해 주님을 맞을 준비를 시키는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구속을 믿음으로 받아드리게 하심을 감사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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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때가 차매, 하나님의 시간에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기억합니다.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세례요한을 태어나게 하시며, 십자가의 방법으로 모든 죄를 깨끗게 하시며 구원하시니 참으로 영광입니다. 과거에도, 지금도, 하나님의 일은 계속 진행됨을 기억합니다. 상황과 환경을 보면 소망이 없어보이지만, 하나님은 그 속에서도 세밀히 일하고 계심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눈을 뜨고 믿음으로 순종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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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오늘 아침에 읽는 말씀은 메시야 시대가 열리는 것을 알려 줍니다. 말라기의 배경에서 부터 예수님이 태어나기까지 400년 넘는 동안 이스라엘은 역사적으로 굵직한 일들을 겪었습니다. 제국의 권력이 바빌론에서 페르시아로 넘어갔고, 페르시아의 기운이 한창이었을 때 마케도니아 (그리스)에서 한 왕조가 일어나 섬들을 통일시키고 그리스의 영토를 넓혀 갔습니다. 아버지가 전쟁마다 승리하여 땅을 정복하니 자기가 크면 정복할 땅이 남아 있겠느냐고 걱정했다던 알렉산더 대왕이 패권을 잡고 바야흐로 그리스 (헬라)의 철학과 문화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33살이 채 못되어서 알렉산더는 병으로 죽고 정해 놓은 후계자가 없는 그리스는 알렉산더의 장군들 사이서 둘로 나뉘어 그 중 프톨레미가 차지한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땅에 살던 유다인들은 그리스어로 번역된 구약성경도 만들면서 그리스-헬라화 되어 갑니다. 프톨레미와 함께 알렉산더 대왕을 계승한 셀레우코스는 바빌론 땅을 통치하지만 프톨레미가 뺏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되찾으려고 두 왕조 사이엔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안디옥)가 팔레스타인을 정복합니다. 안티오쿠스 가문의 왕들이 처음에는 유다인에게 우호적이었으나 차차 핍박하는 정책을 펼치기 시작하고 4세 때에 와서는 탄압이 극심해 집니다. 이런 세월 속에서 유다인들 가운데는 그리스-헬라 정치문화권에 흡수되어 안전하게 살기를 바라는 유다 지도층도 상당했을 것입니다. 알렉산더의 그리스-헬라 왕조는 안티오쿠스 3세 때 로마제국에 패하여 조공을 바치는 신세로 전락하는데 4세 시대에는 유다인 탄압정책에 항거하는 무장 독립운동 즉 마카비운동이 일어나고 그후 100년 동안 유다인은 하스모니안 왕조라고 불리는 마카비의 후예 밑에서 에돔까지 정복하여 그 지역에 총독까지 두면서 잠깐이지만 왕조를 이루어 삽니다. 하스모니안 (마카비) 왕조가 역시 4대까지 왔을 때 에돔지역을 맡아 관리하는 총독은 안티파스인데 그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헤롯의 할아버지입니다. 헤롯의 가문은 마카비 왕조에 반역을 하고 무서운 기세로 확장하는 로마제국 아래로 들어가기를 바라며 결국 유다의 왕자리를 빼앗고 왕이 됩니다. 그 헤롯이 유다를 통치하던 때에 요한이 태어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그날이 그날 같은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는 백성 속에서 늙은 부모에게는 기쁨과 즐거움이 되고 하나님 앞에서는 큰 인물이 되는 요한이 탄생할 것이라고 가브리엘 천사가 찾아와 전합니다. 말라기에게 많은 환상을 보여준 하나님의 사자들이 물러가고 조용했던 400여년 동안 유다는 하나님의 음성 대신 열강의 고함소리를 들으며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희미하고 왕의 명령은 또렷하기만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기억 속에 있고 왕의 진노는 문 앞에 와 있습니다. 우리는 늘 이런 식입니다. 우리의 삶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듯 하고, 세상은 너무 시끄럽기만 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때는 늘 우리를 찾아옵니다. 그 때를 알아보는 예민한 마음으로 살기를 원합니다. 그분의 시간에 그분이 하시는 일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자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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