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서 4장: 면면히 이어져 온 하나님의 구원역사

해설:

앞에서 하나님은 “내가 지정한 날”(3:17)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은 교만한 자와 악한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되겠지만(1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의 날이 될 것입니다(2-3절). 이것은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마지막 심판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계 1:8)라고 하셨습니다. 시작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마치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실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4절). 하나님의 날에 대한 가장 좋은 준비는 그분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은 예언자 엘리야를 보내실 것을 예언하십니다. 죽지 않고 들림 받은 엘리야는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5절) 다시 와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하십니다(6절). 이 예언에 근거하여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다시 와서 메시아의 길을 준비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이 예언이 자신의 아들에게서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었습니다(눅 1:67-79).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세례 요한이 다시 오시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7:10-13). 그것은 곧 자신이 메시아라는 뜻이었습니다.

묵상:

말라기는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마지막 예언자였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말라기서가 끝나는 곳에서 한 페이지만 넘기면 마태복음서가 나옵니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5백 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습니다. 말라기 예언자 이후로 5백 년 가까이 예언자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간헐적으로 음성(히브리어로 ‘밧콜’ bat kol)을 들려 주실 뿐이었습니다. 이 침묵의 기간에 대해 예언자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보수하고 재건하라는 말씀이 내린 때로부터 기름을 부어서 세운 왕이 오기까지는 일곱 이레가 지나갈 것이다”(단 9:25)라고 예언했습니다. “일곱 이레”는 말라기부터 세례 요한까지의 침묵 기간을 가리키는 말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그 예언대로 “일곱 이레” 동안의 긴 침묵 후에 하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보내어 엘리야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그가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감옥에 갇혔을 때, 예수님은 비로소 침묵을 깨고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여라. 복음을 믿어라”(막 1:15)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렇게 선포된 복음이 2천 년 후에 우리에게 전해졌고, 우리는 그 복음에 응답하여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태초로부터 마지막 날까지 이어져 갈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흐름 속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든든한 반석입니다. 

5 thoughts on “말라기서 4장: 면면히 이어져 온 하나님의 구원역사

  1. 구약성서 맨 끝입니다. 이 말씀 이후로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십니다. 모세에게 “나는 나다 I am who I am” 라고 당신의 이름을 알리신 야훼는 오늘 말씀을 끝으로 모습도, 음성도 더 이상 사람과 나누시지 않습니다. 말라기 시대 이후 하나님으로부터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던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말을 하고 산다는 것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말라기 이후의 500 여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으로부터 “Silent treatment”를 받은 것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정말 침묵하시는 것인지 내 귀가 어두워 아무 음성도 듣지 못하는 것인지 참 답답하고 괴로운 시간이 있었습니다. “사귐의 소리” 묵상을 처음 시작하던 해의 여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이 괴로와 이를 견디기가 어렵고 또 정말 외롭다는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소연이지 바른 기도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멀어진 것 같아 슬펐습니다. 하나님이 화가 났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울과 두려움이 마음에 한가득이었는데 어느 날 하나님 앞에 쏟아놓기 시작했습니다. 사람 몸무게의 반은 마음이 차지하는 걸까요. 그렇게 쏟아놓자 가벼워졌습니다. 아니, 그보다 먼저 외로움이 물러가는 것 부터 느꼈습니다. 사람에게 내보이는 마음과 하나님께로 가져가는 마음이 같은 마음이 아닌 때가 있습니다. 마음이 다르다기보다 마음을 감 싼 덮개를 어디까지 푸느냐가 다른 것이겠지요. 그 때 알게 된 것 하나는,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느꼈던 동안엔 나도 마음을 열지 않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나도 침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하나님의 침묵은 끝이 납니다. 그 때 오셨던 예수님은 지금까지도 어디로 가시지 않고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이제 침묵은 없습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침묵하신 적은 없습니다. 하나님과 매일 대화하기를 원합니다. 매일 더욱 친해지기를 원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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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랫동안 기도에 침묵하시는 주님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성경과 매일 아침 사귐의소리가
    주님의 응답이심을 미쳐 깨닫지 못했습니다. 세상끝까지 항상 함께하시겠다는 약속을 꼭
    붙잡고 숨질때까지 살기를 원합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높고 험한 길에서도 임마누엘 주님과
    동행하며 감사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다시오시는 메시아의 사랑을 세상에
    전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두 갈래로 갈라진 이땅의 민심이 주님 은혜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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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그 마지막 날은 어두운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는 공포의 날이지만, 의로운 자들에게는 희망의 날입니다. 마치 학교에서 시험을 보는 날이, 준비를 하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공포의 날이 되지만, 오히려 열심히 시험을 준비한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희망의 날처럼 느껴지듯이, 예수님이 다시 오는 그 날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희망의 날입니다.

    창세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의 귀한 진리와 인도하심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렇기에 오늘도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분의 길을 따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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