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기서 2장: 제사장의 책무

해설:

제사장들을 책망하는 말씀이 계속 이어집니다(1-9절). 하나님께서는 레위 자손들에게 제사장직을 맡기면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지만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백성들을 오도했습니다. 그 일로 인해 하나님은 축복을 저주로 바꾸었다고 하십니다(2절). “레위와 맺은 언약”(4절)은 아론을 제사장으로 세우면서 주신 약속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생명과 평화가 약속된 언약”(5절)이었습니다. 아론과 그 자손들은 그 언약을 따라 신실하게 소임을 다했습니다(5-6절). 하지만 지금의 제사장들은 “바른 길에서 떠났고, 많은 사람들에게 율법을 버리고 곁길로 가도록”(8절)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모든 백성 앞에서, 멸시와 천대를 받게”(9절) 하셨습니다.

이어서 말라기는 유다 백성의 네 가지 잘못을 지적합니다. 첫째, 그들은 한 아버지를 모시고 있으면서도 서로를 배신했습니다(10절). 그것은 하나님께서 조상들과 맺어 주신 언약을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둘째, 유다의 남성들은 이방 우상을 섬기는 여자와 결혼하여 우상 숭배의 죄를 범했습니다(11-12절). 셋째, 유다의 남성들이 젊은 날에 만난 아내를 버렸습니다(13-16절). 아내를 학대하는 것도, 이혼하는 것도 하나님께는 죄가 됩니다. “경건”(15절)은 가장 가까운 배우자에 대한 태도에서 증명되어야 합니다. 바빌론에서 결혼한 사람들이 유다 땅으로 돌아온 후에 본토 유다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 아내를 버리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넷째,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의심하는 말을 함으로써 주님을 괴롭게 해 드렸습니다(17절).

묵상:

제사장은 하나님과 백성의 중간에 서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대해서는 백성을 위해 제사 드리고, 백성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래서 제사장의 직분은 영예롭고 그 책임은 무겁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생명과 평화가 약속된 언약”을 주셨습니다. 

불행하게도 당시 제사장들은 두 가지 면에서 모두 실패했습니다. 1장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있어서도 불성실 했고, 2장에서 보는 것처럼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도 불성실했습니다. 그로 인해 그들은 백성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 있고,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기고 온갖 불의를 행했습니다.

이 말씀은 저같은 목회자들에게는 두려운 말씀입니다. 목회자가 제사장직을 이어 받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목회자가 하는 일은 제사장의 일과 유사합니다. 하나님께 올리는 성도들의 예배를 섬기고,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 앞에서 과연 나는 정성을 다해 거룩한 예배를 섬기고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전하고 있는지 자문하게 됩니다. 

이 말씀은 모든 성도들에게도 두려운 말씀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모두 “왕과 같은 제사장”(벧전 2:9)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으로서 나는 정성을 다해 예배 드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 경건하게 살고 있는지 자문해야 합니다. 그분이 찾으시는 경건은 예배의 태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사도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깨끗하고 흠이 없는 경건은, 고난을 겪고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아주며,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약 1:27).

3 thoughts on “말라기서 2장: 제사장의 책무

  1. 주님과 세상사이에 왕과같은 제사장의 직분을 허락 하셨는데 생명의 말씀에 순종하지않고
    주님의 이름을 두려워 하지않고 살아 왔습니다. 지금 당하고 있는 시련은 다시 바른길로
    인도 하시려는 사랑이심을 고백합니다. 이웃과 함께 창조주 사랑의 하나님만 기리고 세상에
    주님의 이름과 부활의 주님을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 주십시오.
    내일 있을 정권 이양이 순조롭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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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라는 제일 큰 두 계명이 ‘왕과 같은 제사장’이라는 직책의 책임과 사명임을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 하나님을 예배 한 후에 내 삶에서 그 사랑과 은혜를 가족과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중요한 책임과 사명이 있음을 기억해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건강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건강이란? 신체적인 건강 뿐만이 아닌, 마음과, 영혼이 모두 건강한 상태입니다. Health와 Healing의 어원이, 그리스어 Holos에서 나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Holos는 거룩한 것이며 Whole 전체의 의미를 갖습니다. 나의 모든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거룩하게 살아가는 ‘건강한 왕과 같은 제사장’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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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유다의 회복은 제사장과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지키는 일에서 시작하고 또 그것이 전부입니다. 구별된 삶과 예배로써 하나님 앞에 신실하고 경건한 백성으로 사는 것이 유다 백성의 존재 방식이고 이는 오늘 크리스찬에게도 유효합니다. 책임적인 크리스찬으로 산다는 것은 사회의 법을 준수하는 것을 포함하되 그 선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이혼”의 예를 봐도 예수님은 내적인 성실까지도 짚으셨습니다. 율법의 틀을 깨뜨리신 예수님은 마음대로 하고 살라는 무제한의 자유를 주신 것이 아니라 실은 모든 기준을 올리시고, 예수님의 마음을 닮은 새 마음을 따라 살라는 새 명령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지적하는 유다 백성의 죄는 문자적으로 읽어도 마음에 찔림을 주고, 수면 밑을 보며 묵상하면 더더욱 죄송해지게 만듭니다. 내일 미국 대통령 취임식이 열립니다. 새 정부가 출범합니다. 취임식에서 대통령은 선서를 합니다. 국민 앞에서 서약을 합니다. 신실하게 성심성의껏 대통령직을 수행하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미국 대통령의 선서는 미국 국민 뿐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선서는 상징입니다. 선서를 하고 안하고에 따라 책임과 의무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혼예식 때 서약도 마찬가지입니다. 결혼식 때 서약한 것이 떠올라서 남편한테 잘 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상황이 좋지 않을 때엔 그 날의 약속을 기억하면 도움이 됩니다. 약속을 지키고 싶기 때문입니다. 예배와 삶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도 이런 맥락일 것입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삶의 여러 모양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던 백성이 같이 모여 예배를 드림으로 주의 이름을 경축하고 높입니다. 하나님과 약속합니다. 예배 때마다 선서하는 셈입니다. 미국을 위해 기도합니다. 대통령은 물론 공직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미국 뿐 아니라 미국을 쳐다보는 세계를 위해 기도합니다. 조심하고 언제나 성실하게 하소서 (17절). 자비를 베푸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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