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서 12장: 그들이 찔러 죽인 나

해설:

하나님께서는 스가랴에게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을 주십니다(1-9절). 장차 세상의 모든 민족이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공격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을 펴신 분, 땅의 기초를 놓으신 분, 사람 안에 영을 만들어 주신 분”(1절)께서 이방 민족들을 치셔서 예루살렘을 보호하실 것입니다. 유다의 지도자들은 “만군의 주님을 힘입어서 강하게 되어”(5절) 이방 민족들을 물리칠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과거 다윗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영광이 유다에 회복될 것입니다. 유다 백성은 강한 백성이 될 것이고, 다윗 왕실은 “하나님처럼”(8절) 백성을 인도할 것입니다. 

10절부터 14절의 말씀은 매우 갑작스럽습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과 유다에 대대적인 회개 운동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 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를 죽였기 때문입니다. “나 곧 그들이 찔러 죽인 그”(10절)라는 표현을 보면, 하나님은 기름 부어 보낸 메시아를 당신 자신으로 간주하십니다. 메시아를 찔러 죽인 행동은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을 찌른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구하는 영”과 “용서를 비는 영”을 부어 주실 것이며, 그러면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슬피 울게 될 것입니다. “다윗 집안의 가족들”(12절)이 우는 것은 다윗 계열의 메시아가 죽었기 때문이고, “나단 집안의 가족들”이 우는 것은 그가 예언한 메시아(삼하 7:12-16)가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묵상:

12장의 전반부와 후반부의 예언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룹니다. 전반부가 빛이라면, 후반부는 어둠입니다. 전반부가 희망이라면, 후반부는 절망입니다. 전반부가 환희라면, 후반부는 통곡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사랑하셔서 이민족들의 침략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영광을 누리게 하셨는데, 유다 백성은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보낸 메시아를 찔러 죽일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슨 일인지도 알지 못하고 행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구하는 영”과 “용서를 비는 영”을 부어 주실 때에야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깨어져 슬피 울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에 대해 “나 곧 그들이 찔러 죽인 그”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한 것은 곧 그분을 보내신 하나님을 찔러 죽게 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유대인들만의 죄가 아닙니다. 유대인들의 죄에 모든 인류가 참여한 것입니다. 그분은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감화를 받은 사람들은 십자가 밑에서 통곡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분을 찔러 죽게 한 것이 바로 자신임을 인정합니다. 그럴 때 그분의 보혈은 우리에게 흘러 들어 와 죄성을 치유하고 새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3 thoughts on “스가랴서 12장: 그들이 찔러 죽인 나

  1.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 보혈의 능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십자가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또한 자신의 죄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달려죽게 했음을 믿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간혹 어떤 분들은 이 속죄와 보혈에 대해서 거부반응을 내비취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참하게 예수님을 우리 죄때문에 십자가에 죽게하시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복음은 양날의 검과 같습니다. 죄인의 통곡과 새 사람이 된 기쁨과 환희가 함께 공존합니다. 아이러니컬한 이 대조의 상황이 바로 십자가의 보혈로 가능해졌음을 믿습니다. 오늘도 주님의 거룩한 보혈로 나와 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에 덮여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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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세상이 교회와 성도들을 비웃고 있고 적대시하는 이유는 먼저 저희들이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삶으로 살기때문입니다. 모든교회와 개개인 성도의 마음에 성령님이 오셔서 죄를
    깨닫고 통곡하고,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모든 교회와 성도들이 주님안에서
    하나로뭉쳐 이방인들의 공격에 요동하지않는 시간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하루속히 다같이
    모여 두손들고 주님께 찬양과 예배를 드리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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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스가랴의 환상에서 예루살렘은 독이 든 잔이 되어 주변 나라를 다치게 합니다. 모든 나라와 원수가 되는 예루살렘은 바위처럼 무거워서 옮기려하는 사람은 다 다치게 됩니다. 달려드는 말이 두려워 떨며 눈이 멉니다. 나뭇단을 태우는 불처럼 되어 왼쪽 오른쪽의 나라들을 다 멸망시킵니다. 지도자의 마음에는 만군의 여호와가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듭니다. 유다 백성 가운데 가장 약한 사람도 다윗처럼 강해지고, 다윗 집안은 마치 하나님처럼, 여호와의 천사처럼 되어 백성을 인도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이 여기 9절에서 끝난다면 스가랴의 환상은 열강의 압제를 복수하고 강대국이 된 이스라엘의 승전가로 남았을 지 모릅니다.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기로 결심하고 일어선 유다 백성이 성전 재건은 물론이요 마침내 힘 센 나라로 변화되는 “만화 같은” 스토리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10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미 여호와를 찔러 죽였다고 말합니다. 자기 맏아들을 잃은 것처럼 온 땅이, 집집마다, 이스라엘의 부족이 각각 다 운다고 말합니다. 9절과 10절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두 절 사이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성전을 다시 세우시고 큰 전쟁, 작은 전쟁을 치루는 우리를 힘있게 만들어 주시고, “하늘을 펼쳐 놓으시고 땅의 기초를 만드신 분, 그 안에 사람의 영을 만드신 여호와께서 (1절)”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거부한 우리의 강팍한 마음이 이제 자비와 은혜의 영을 받아 통곡을 합니다. 우는 것은 끝이며 시작입니다. 어린 아이일 때는 울 일이 그리도 많더니 어느새부터 우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아이와 어른은 우는 것과 울지 않는 것으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아이의 눈물은 감정을 조절할 줄 몰라 나오는 것이라면 어른의 눈물은 감정을 조절하느라 나옵니다. 울면서 복잡한 감정이 정리됩니다. “맘껏 울기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말은 눈물의 힘을 알기에 하는 말입니다. 새해에는 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어른으로 살고 싶습니다. 주님 앞에서 우는 것을 복으로 볼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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