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서 11장: 깨어진 은총

해설:

1절부터 3절까지는 이방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묘사합니다. 레바논의 백향목과 바산의 상수리 나무(1-2절)는 절대 강국의 교만을 상징합니다. 주님께서 심판의 팔을 펴시는 날, 세상을 호령하던 제국의 교만은 꺾일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스가랴에게 또 다시 상징 행동을 하라 하십니다. “잡혀 죽을 앙 떼”(4절)를 먹이라는 것입니다. 양 떼를 잡아 먹을 사람들에게 내어 주라는 뜻입니다. 양들에게 불쌍한 마음을 가지지 말라는 뜻입니다(5절). 이스라엘의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그렇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6절). 사가랴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합니다. 그는 양 떼를 돌보기 위해 ‘은총’이라는 지팡이와 ‘연합’이라는 지팡이를 사용합니다(7절).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이스라엘과 유다를 하나로 만드신 것을 상징합니다. 그에게는 세 사람의 목자가 있었는데, 일도 하지 않고 주인 목자를 미워 했기에 한 달 안에 해고해 버립니다(8절). 세 목자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소임에 게으르고 하나님을 미워 했기에 심판에 직면 했다는 뜻입니다. 그런 다음 사가랴 자신도 목자의 역할을 벗어 버립니다(9절).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이 하나님께도 버림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 때 사가랴는 ‘은총’이라는 이름을 가진 지팡이를 꺾어 버립니다(10절). 그것은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이스라엘을 보호하겠다는 언약이 깨졌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11절). 사가랴는 목자로 일한 품삯으로 은 삼십 개를 받습니다. 은 삼십 개는 율법이 정한 종의 몸값입니다(출 21:32). 이것은 목자로서의 그의 역할에 대한 모욕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사가랴에게 그 돈을 토기장이에게 던져 버리라고 하십니다(13절). 그는 주님의 지시대로 한 다음 ‘연합’이라는 지팡이도 꺾어 버립니다(14절). 그것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깨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런 다음 주님께서는 스가랴에게 “쓸모 없는 목자”(16절)로 분장하라고 지시하십니다. 그 목자는 “양을 잃어 버리고도 안타까워하지 않으며, 길 잃은 양을 찾지도 않으며, 상처 받은 양을 고쳐 주지도 않으며, 튼튼한 양을 먹이지 않아서 야위게 하며, 살진 양을 골라서 살을 발라 먹고, 발굽까지 갉아 먹을 것”(16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지도자들에 대한 비유입니다. 주님께서는 그 목자들에게 재앙이 달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7절). 

묵상: 

양은 다른 동물과 달리 무리를 지어 살며 목자에게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양이 무리를 떠나는 것 그리고 목자를 떠나는 것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그렇습니다. 우리 인간도 홀로 살아갈 수 없으며 하나님께 의지해야만 살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 없어라”(시 23:1)고 고백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목자이신 하나님은 사람 목자들을 세워 당신의 일을 하게 하십니다. 목자로 세움 받은 사람들은 양떼를 위해 자신의 안위를 희생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양을 사랑할 대상이 아니라 잡아 먹을 대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목자들을 심판에 부치셨습니다. 목자 없는 양처럼 버려진 백성은 이웃 나라에 의해 공격 당하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들의 죄로 인해 하나님의 은총이 멈추고 언약이 깨어져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양들을 영영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아들을 보내어 당신의 백성을 직접 돌보기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요 10: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당신의 말씀대로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셨지만,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그분의 몸값으로 은 삼십 개를 가룟 유다에게 주었습니다(마 26:15).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사형이 확정되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찾아가 은 삼십 개를 돌려 주었고(마 27:3), 그들은 그 돈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샀습니다(마 27:10). 인류는 이렇듯 동일한 죄를 거듭 반복하며 스스로 재앙을 찾아 들어갑니다. 

3 thoughts on “스가랴서 11장: 깨어진 은총

  1. 목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하루입니다. 목자가 양을 돌보지 아니하고, 오히려 양을 잡아먹으려고 한다면 그 목자만 의지했던 양들은 얼마나 배신감을 느낄까요? 지금 시대의 기독교인들 혹은 비기독교인들의 심정을 대변해주는 듯 합니다. 선한 목자의 탈을 썼지만, 알고 보니 양들을 잡아먹으려는 목적이 있음을 깨달았을 때 실망감과 배신감이 상당했을 듯합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충실한 목자임에도 불구하고, 양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됩니다. 잘못된 신학과 사상으로 양들을 다른 길로 이끄는 충실한 (?) 목자.

    예수님이 우리의 선한 목자임을 찬양합니다.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버리시고 십자가의 놀라운 사건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심을 믿음으로 받습니다. 오늘도 나의 뜻과 경험에 의존해서 선택하는 하루가 아닌, 선한 목자되신 예수님의 길을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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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늘 11장 말씀을 여러 번 반복해 읽었습니다. 목자에게 버림 받은 양 떼를 보기도 하고 은돈 삼십 개 부분에선 가롯 유다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17절에서 말하는 양 떼를 돌보지 않는 못된 목자, 힘과 지혜가 사라진 못된 목자를 읽을 때는 끝이 좋지 않은 대통령, 독재자와 권력자들이 떠올랐는데 우리 당대에 뉴스를 장식한 것만해도 그 숫자가 꽤 많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성경에서 양 떼와 목자의 관계가 나올 때는 백성과 지도자를 뜻하는 메타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9절 “이제는 다시 너희의 목자 노릇을 하지 않겠다. 죽을 것은 죽고 망할 것은 망해라. 살아남은 것들도 자기들끼리 서로 잡아먹어라”를 읽으면서는 서글프기도 하고 무섭기도 합니다. 우리를 고아 같이 버려 두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을 떠올리며 힘을 얻곤 했는데 오늘 아침엔 들판에 버려진 양 떼와 같은 심정이 되었습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는 말은 참 맞는 말입니다. 미워하는 데 쓰는 감정 마저도 아깝게 느껴질만큼 완전히 식어버린 무관심의 상태가 느껴지는 표현이 9절에 담긴 죽든지 망하든지 네 멋대로 하거라 입니다. 오 주여, 우리를 이렇게 내버려두지 마소서. 은혜를 거두지 마소서. 연합을 태우지 마소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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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주님 거짖 목자와 참 목자를 구별하는 분별력을 원합니다. 궁극적인 참된 목자는 양때 들을
    위하여 목숨까지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 이심을 고백합니다. 은총과 연합을 꺽지 마시고
    주님의 은총으로 이땅과 조국에서 정치 이념으로 둘로 갈라진 백성들이 연합되어 하나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웃과 더불어 사랑의 주님 세상에 축복 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세상에 삶으로 알리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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