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서 7장: 금식하며 애곡하는 이유

해설:

“다리우스 왕 사년 아홉째 달”(1절)은 주전 518년 12월에 해당합니다. 스가랴가 예언자로 부름 받은 지 2년 후의 일입니다. 

베델에 사는 어떤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바빌론에서 귀한한 지도자들)에게 하인들을 보내어 그동안 해 온 대로 다섯째 달에 애곡하면서 금식해야 하느냐고 묻습니다(2-3절). 예루살렘이 바빌론에 의해 함락되고 많은 유대인들이 포로로 잡혀 간 후에 본토에서는 그 재앙을 잊지 않기 위해 자주 금식하며 애곡했습니다. 다섯째 달에 하는 금식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날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문의해 온 그 사람은 성전을 재건하는 마당에 계속 금식하고 애곡해야 하는지 궁금했던 것입니다.  

그 때 스가랴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4절). 주님께서는, 그들이 지난 칠십 년 동안 한 해에 네 번이나 금식하며 애곡해왔지만 정말 하나님을 생각하여 그렇게 한 것인지 물으십니다(5-6절). 진정으로 당신을 생각하고 금식하고 애곡했다면 그 증거가 삶을 통해 나타나야 한다고 하십니다. 공의를 추구하고 관용과 자비를 베풀며 사회적 소수자들을 돌보는 행동으로 이어져야만 금식과 애곡이 의미가 있습니다(9-10절). 

이것은 새로운 말씀이 아닙니다. 예전의 예언자들을 통해 이미 주신 말씀인데, 마음이 차돌처럼 굳어버린 조상들이 그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주님께서는 그들을 심판에 부치셨고, 그로 인해 그들은 칠십 년이 넘도록 유배 생활을 했던 것입니다(11-14절). 이제 고국으로 돌아와 국가를 재건하는 그들은 조상들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묵상:

만일 미국의 국회 의사당이 테러 집단에 의해 파괴되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어마어마한 국가적 트라우마로 오래도록 남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가 유대인들에게 그러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본토에 남겨진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 당하던 날을 기억하며 금식하고 애곡했습니다. 칠십 년이 지나서 바빌론에 잡혀갔던 포로들이 돌아와 성전 재건을 시작하자, 금식하고 애곡하는 일을 계속해야 하는지를 의문하는 사람들이 생겼습니다. 2절에 나오는 베델 사람이 그 중 하나였습니다. 그가 하인들을 보낸 것을 보면 상당한 재산가였을 것입니다. 

그가 이 질문을 한 이유는 애곡하고 금식하는 것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이 이제는 연례 행사가 되고 매너리즘에 빠져서 마음 없이 때우는 형식이 되어 버렸을 것입니다. 스가랴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그 추측을 지지해 줍니다. 금식하며 애곡할 때 그들은 마음 없이 때웠고, 금식 기간이 끝나면 폭식을 탐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금식과 애곡은 자비와 정의와 관용과 긍휼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느 새 조상들의 잘못을 답습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말세에 어려운 때가 오면 사람들은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경건함의 능력은 부인할 것입니다”(딤후 3:5)라고 경고했습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눈을 감고 자신을 돌아 봅니다. 나는 마음 다해 예배하고 있는지? 그 예배가 나의 생각과 행동에 차별성을 만들어 내고 있는지?

2 thoughts on “스가랴서 7장: 금식하며 애곡하는 이유

  1. 먹는 일은 별 일 아닌 것 같아도 실은 참 큰 일입니다. 먹는 일 속에는 속과 성, 일상과 예배, 집착과 나눔, 싸움과 평화…많은 개념과 현실이 담겨 있습니다. 밥은 곧 하늘이라는 동양의 고전적인 지혜를 보아도, 또 현대에 와서 사회정의 차원에서 말하는 선언적인 의미를 생각해 보아도 먹는 일, 먹고 사는 일은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한국의 경제 규모가 커지고 국민의 소득수준이 향상된 뒤로 먹는 일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전에 없이 먹는 일 자체에 목숨을 건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한국에 살지도 않으면서 한국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것은 피하고 싶지만 한국이 방송 프로그램은 먹는 일 일색이 되었습니다. “먹방”이라는 새로운 말이 만들어져 국제적인 단어가 되었을 정도로 음식은 최고 인기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 끼를 대할 때의 내 모습은 내 믿음의 현주소를 가장 잘 보여주는 순간입니다. 사진을 찍는 지 모를 때 찍힌 사진에 담긴 표정에서 그 사람의 진면목을 발견하듯 밥상 앞에 앉았을 때 갖는 내 생각만큼 정직하고 “나다운” 생각은 없습니다. 먹는 일이 이토록 진실한데 먹는 일을 하나님으로 대체하는 금식이란 정말 어마어마한 일입니다. 먹는 일에 기울이는 정성과 의지를 고스란히 하나님께 드리는 일입니다. 스가랴에게 하시는 여호와의 말씀 속에는 금식 자체보다 하나님의 뜻을 기리지 않고 사는 모습에 대한 실망감이 들어 있습니다. 서로 사랑과 긍휼을 베풀라고 하십니다. 사람이 빵으로, 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긍휼로 산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과 나누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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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실된 금식은 굶주리는자와 가난한자를 돌보는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삶을 가지고 십자가 앞에 무릎을 끓었습니다.
    식사때마다 가장 부유한 미국땅에서도 굶주리는 어린이들이 있음을 깨닫게 하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 하기를 원합니다.실천하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웃과 함께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이땅의 모든사람들이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는 나라가 되기를 간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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