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랴서 6장: 왕관을 준비하라

해설:

여덟 번째 환상에서 스가랴는 놋쇠로 된 두 산으로부터 병거 네 대가 나오는 것을 봅니다(1절). 네 개의 병거는 각각 다른 색깔의 말이 끌고 있었습니다(2-3절). 그 말과 병거가 무슨 의미인지 천사에게 묻자 네 말과 병거는 하나님의 영을 의미한다고 설명해 줍니다. 네 말이 병거를 끌고 사방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영을 온 세상으로 보내십니다(4-7절). 네 말을 보낸 후 천사는 “북쪽 땅으로 나간 말들이 북쪽 땅에서 내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다”(8절)라고 말합니다. 유다 백성은 “북쪽 땅”에 거주하던 민족들(시리아, 아시리아, 바빌론 등)로부터 수난을 당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빌론을 심판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런 다음, 주님께서는 스가랴에게 ‘상징 행동’을 하게 하십니다. ‘상징 행동’은 행동으로 예언을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서, 하나님은 예언자들에게 자주 그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스바냐의 집에 가서 바빌론에서 돌아온 세 사람을 만나(9-10절) 은과 금을 받아 왕관을 만들어 여호수아 제사장에게 씌우라 하십니다(11절). 그런 다음 왕관을 벗겨 성전에 보관 하라고 하십니다(14절). 그 왕관은 장차 오실 메시아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을 여호수아에게 전하라 하십니다. 장차 “새싹”이라 불릴 사람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 싹은 자라나서 “주의 성전”을 지을 것입니다(12절). 스룹바벨이 재건할 성전은 그 사람이 지을 성전에 대한 예표일 뿐입니다. 그는 영원한 왕이며 또한 완전한 제사장입니다(13절). 새번역 성경의 “한 제사장이 그 왕좌 곁에 설 것이며”라는 번역 보다는 개역개정의 “제사장이 자기 자리에 있으리니”라는 번역이 더 좋습니다. 왕좌에 앉은 그 사람을 제사장이 보좌한다는 뜻이 아니라, 왕좌에 앉은 그 사람이 곧 제사장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두 사람이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며”라는 말은 그 사람이 왕의 직분과 제사장의 직분을 겸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묵상: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새싹이 돋아나는 것과 같았습니다. 인류 역사가 가장 암울할 때, 가장 비천한 부모에게서, 가장 알려지지 않는 동네에서 그분은 태어나셨고, 몇몇 비천한 사람들에게만 그 소식이 알려졌습니다. 그분은 30년 의 세월 동안 나사렛에서 묻혀 살았습니다. 때가 되었을 때 그분은 갈릴리에 나타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스룹바벨이 재건하고 헤롯 대왕이 보수한 예루살렘 성전을 두고 그분은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요 2:19)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스스로 성전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는 더 이상 손으로 지은 성전을 향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갑니다. 믿음으로 인해 우리는 성전 안에서도 가장 거룩한 지성소에 살게 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즉 왕과 제사장)이 평화롭게 조화를 이루며 함께 일할 것이다”(13절)라는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분은 완전한 제사장으로서 당신의 몸으로 영원한 제사를 드리셨고, 부활 승천하셔서 영원한 왕이 되셨습니다. 그분이 다시 오셔서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할 때, 우리 모두는 스가랴가 만들어 보관해 놓은 왕관을 그분에게 씌우고 그분과 함께 영원히 다스릴 것입니다. 

3 thoughts on “스가랴서 6장: 왕관을 준비하라

  1. 영화로우신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우리에게 메시야를 보내시고, 그 메시야를 믿음으로 믿고 살게 하심에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가 있을까요? 스가랴 6장의 말씀이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것과, 우리의 왕과 제사장으로 오신 그리스도 예수를 기억합니다. ‘기름 부음 받은자’ ‘메시야’ 라는 분이 모든 만물의 왕이심을 기억합니다. 하늘의 뜻이 땅에 이루어지듯이,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 이미 오신 그리스도! 그 분을 내 삶,가정, 교회, 그리고 사회에 왕으로 모십니다. 그리고 마라나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대합니다!

    Like

  2. 십자가의 공로로 감히 주님의 지성소로 들어가는 특권을 허락하신 사랑의 주님께 감사와
    예배와 영광을 드립니다. 메시아 예수님은 저희들의 구원자 이시고 왕 이시고 대제사장
    이심을 고백합니다. 비록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함께하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꼭 붙잡고
    영생과 천국을 미리 앞당겨 맛보기를 원합니다. 어지러운 미국의 정치를 바로 잡아주시고
    정권 이양이 순조롭게 되기를 간구합니다. 이웃과 함께 주님께서 허락하신 사랑으로
    두려움없이 담대히 세상에 나가는 오늘이 되도록 도와주십시오. 아멘.

    Like

  3. 오늘 본문에서 주목하게 되는 부분은 새순이라 부르는 사람이 여호와의 전을 지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스가랴는 환상으로 새순에 대한 예언을 보고 들었지만 우리는 예수께서 그분이심을 역사의 증언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 증언은 우리 안에 믿음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새순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며 제사장이시라는 것은 우리 삶이 전적으로 그분 아래에 놓여있음을 뜻합니다. 왕의 법이 세상의 물리적인 질서를 정한다면 제사장의 법은 사람의 내적인 질서를 지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어제는 현현절 (ephiphany)로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아가 경배한 것을 기리는 축일이었습니다. 한국교회 전통에서는 현현절을 기리는 것 같지 않지만 어제 페북에는 현현절에 관한 설명과 의미를 올린 포스팅이 여러개 올라왔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선물을 들고 마리아와 요셉 가정을 찾아와 아기 예수님을 본 것이 언제쯤이고 몇 사람이 방문한 것인지, 또 그들이 누구였는지 소상하게 알 길은 없지만 이 땅에 오신 메시아를 만나러 가는 여행길이 멀고 길고 험했다는 것을 마태복음서가 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알현하러 가는 동방박사의 여행길만 위험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만나는 믿음의 길도 순탄한 소풍길은 아닙니다. 예수님께로 향하지 않게 내 눈과 발을 가리고 붙드는 것들이 많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하며 일하지 않으면 (ora et labora), 마음은 쉽게 길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어제 같은 종교축일에 나라의 법과 권위를 상징하는 국회의사당은 조롱과 저급함, 폭력의 공격을 받아 씻을 수 없는 수치를 당했습니다. 왕과 제사장이 일치하여 온전한 통치를 이루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스가랴의 여덟번째 환상이라면 어제 미국 수도에서 일어난 사태는 권력에 취한 대통령과 교회가 빚어낸 합작 프로젝트의 최종 프레젠테이션이었습니다. 교회와 권력이 서로에게서 믿고 싶은 것만을 뽑아내어 자기 원하는대로 포장해 내놓으며 우쭐거리던 지난 몇 년 동안의 추한 모습이 어제 전세계에 드러난 것입니다. 주님께 기도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못남과 추함을 다 끄집어 내어 보게 하시고 다 태워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수치스러운 얼굴을 씻어 주시고, 새 옷을 입혀 주시며 머리에 새 왕관을 씌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 우리의 왕과 제사장으로 머무르실 성전을 우리 안에 지어 주소서.

    Like

Leave a Reply

Fill in your details below or click an icon to log in:

WordPress.com Log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WordPress.com account. Log Out /  Change )

Google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Google account. Log Out /  Change )

Twitter picture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Twitter account. Log Out /  Change )

Facebook photo

You are commenting using your Facebook account. Log Out /  Change )

Connecting to %s

%d bloggers like this: